금융실명제가 또다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93년 8월 12일 전격실시 이후 대통령 비자금사건, 야당총재 비자금
의혹설 등 메가톤급 위력을 여러차례 발휘했음에도 관심도는 여전히 높다.

"지상최고의 정의"라는 평가와 "만병의 근원"일는 오명이 엇갈려 평판도
각색이다.

최근 실명제를 관심권의 전면으로 재부상시킨 배경에는 작금의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일정이 자리잡고 있다.

경제상황 악화의 주범으로 실명제를 지목하는 측은 돈흐름 왜곡현상을
이유로 든다.

수조원이 산업현장 대신 장롱속으로 퇴장, 자금난을 악화시켰고 비밀보장
장치가 미흡한 탓에 과소비와 저축율 하락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듣고 있다.

증시침체의 원인을 여기서 찾는 이들도 많다.

난국타개를 위해 메스질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이다.

실명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력하다.

문민정부의 많지 않은 치적중 하나로 남기고자 하는 기대감과 함께 시행
취지와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구린돈이 조성될 수 있는 토양을 갖춰 준다고 해서 자금사정이 급속 개선
되리라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편의적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그러나 대세는 실명제 보완쪽으로 굳어가는 분위기다.

우리경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주권 상실이라는 치욕을 감내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
수혈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맞닥뜨리면 실명제 비판론이 큰 공감을
얻는 판국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국민정서는
보완론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조건부 로 만들고 있다.

증시와 자금시장을 회생시키기 위해 무기명채권 발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보완론을 전제로 한다.

26일 출사표를 던진 3당의 대권주자들이 보완론, 한걸음 더나가 조건부
유보까지 들고 나온 것은 유권자 정서를 자신들의 지지표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앞으로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실명제 논란"은 더욱 더 달궈지는
이슈가 될게 분명하다.

<박기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