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빨갱이지"

"말도 안되는 소리"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측과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측이 보름넘게 벌이고
있는 지루한 색깔공방의 화두다.

이 싸움은 시간이 흐르면서 대통령자문기관인 평통을 비롯 안기부 주한미국
대사관 각종우익단체 전국방장관 김일성, 심지어 북한으로 간 오익제씨까지
두 당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복잡해지고 있다.

여당은 김총재와 일부 주변인물들이 "빨갱이같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여당주장대로 많은 유권자들이 김총재의 사상과 전력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이대표가 김총재 방을 찾아 기자들을 물리치고 독대한 일은
"공산주의자와의 비밀회담"으로 해석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특히 여당은 진실규명보다 "김총재는 색깔이 빨갛다"는 구호만을 유권자
들에게 주입시키는데 더 주력하는 듯하다.

색깔론으로 재미를 봤던 과거의 향수에만 젖은 것은 아닌지.

국민회의는 색깔공방에도 불구하고 김총재 지지도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 안도하고 있다.

신한국당 이대표가 1등자리를 탈환하기는 커녕 3등, 심지어 4등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에는 통쾌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고정표가 많은 김총재의 지지도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색깔론의 약효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고 해석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김총재가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위험인물"을 가려내기 위해 "감"에
의존하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을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여권의 공격에 "용공음해"라며 방어에 치중했을 뿐이다.

색깔공방은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국민들이 기대했던 "큰 정치"를 정면
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선거가 갈등을 해소하고 새출발을 다지는 계기가 되지 못하고 분열 증오
적대감만을 확대 재생산하는 행사로 전락한다면 그런 선거는 없는 게 낫다는
지적도 많다.

정치권이 "선진조국" "강한 경제" "대통합"을 외치기에 앞서 자신들부터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느낌이다.

허귀식 < 정치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