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적십자사간 베이징접촉의 합의에 따라 한적이 12일 대북지원곡물에
대한 직접 전달을 시작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4자회담을 위한 논의가 북한측의 "회담전 정부차원의 대규모 식량보장
요구"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남북간 공식대화 창구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한적요원이 북한에 들어가 곡물을 직접 전달했다는 것은 그 자체
만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의 곡물직접전달이 1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7월말까지
두달여 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도 이같은 기대감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현재 남북을 직접 연결해주는 유일한 창구가 한적인데다 곡물전달의
절차문제 협의 등을 위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남북적십자 관계자들의
접촉은 곧 남북당국간의 간접접촉으로 볼 수 있다.

순항하고 있는 대북경수로지원사업과 함께 한적의 곡물지원이 경색된
남북관계 전반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곡물전달은 무엇보다 그동안 가장 많은 지원을 하고도 국제적십자사
연맹(IFRC)을 통한 간접전달이라는 형식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던 우리측의
대북지원이 제자리를 찾는 계기가 됐다.

신의주 만포 남양 및 남포항과 흥남항의 구호물자 전달이 남북한 적십자
관계자간에 이뤄지며 이를 위해 한적 요원이 3명씩 북한지역을 직접 방문했고
지원되는 물품의 포장지에 지원단체의 이름이 명기됐다.

우리측 지원단체의 이름이 명기됐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남쪽에서
전해지는 온정과 동포애를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일부 지원품이 지정기탁제에 의해 북한의 특정지역과 특정단체에
지원됨으로써 앞으로 실향민과 이산가족들도 지정기탁방식으로 북한의
친지들에게 물품을 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이와함께 이번 지원을 계기로 그동안 15개 시.군지역에 머물렀던 IFRC의
분배지역이 북한전역으로 확산되는 것도 중요하다.

IFRC는 그동안 수해지역을 집중 지원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원물량이 대폭 늘어남에 따라 분배지역이 동북부 내륙
지방인 자강도 양강도 함경남북도 등 북한전역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판문점을 통한 곡물전달이 무산된채 한.중 국경을 거쳐 북한의
신의주 만포 남양 등지에서 인도.인수된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또 한적요원의 북한상주 등을 통한 식량분배과정의 투명성 확보와 군량미
전용방지, 남북당국자간 직접대화 등의 실현도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 이건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