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72세 조용필·최백호의 '찰나'
산스크리트어 크샤나(ksana)에서 음을 따온 ‘찰나(刹那)’는 시간의 최소 단위를 나타내는 불교 용어다. 양쪽으로 잡아당겨진 명주실을 칼로 자를 때, 64찰나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찰나가 얼마나 짧고 빠른 시간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 ‘인생은 찰나 같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도 노년을 맞은 사람이라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일흔두 살 동갑내기 가수인 조용필과 최백호가 똑같은 ‘찰나’라는 이름의 곡을 최근 내놓아 이목을 끈다. 그 나이가 되면 이런 노래를 부르며 삶의 의미를 반추해보고 싶은 것일까. 우연치고는 공교롭다.

두 사람 노래는 모두 찰나를 헛된 시간이 아닌,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으로 긍정 평가한다. 다만, 접근법이 180도 달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최백호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조용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젊은 날 사랑의 떨림과 설렘을 노래한다. ‘세상에 익숙해지고, 문득 뒤돌아 생각해보면/ 두 번 다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들이여’(최백호), ‘우리가 처음 마주친 순간, 내게 들어온 떨림/ 그때는 뭔지 나는 몰랐어’(조용필)라는 가사들이다.

최백호는 곡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피아노와 관현악의 느린 반주로 노래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낭만에 대하여’ ‘영일만 친구’ 등의 히트곡으로 ‘낭만가객’이란 별명을 얻은 음악세계가 그대로 담겼다. 반면 조용필은 신나는 비트와 리듬의 크로스오버를 선보였다. ‘창밖의 여자’에서 최근의 ‘바운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실험해온 ‘가왕’의 개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올해 데뷔 46년을 맞은 최백호는 이번 음반이 24번째다. 데뷔 54년째를 맞은 조용필은 이번 곡을 바탕으로 내년 20번째 정규음반을 낼 계획이다. 최백호는 “90세까지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번 곡에서 놀라울 정도의 젊은 음색을 자랑한 조용필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해외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유명 가수들이 있다.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79), 비틀스 출신의 폴 매카트니(80) 등이다. 그래도 조용필, 최백호처럼 활발하게 신곡을 발표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 없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