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
김태윤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란 최고 권력자가 행사할 수 있는 폭압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 문명사회 차원에서 해석해보면 폭압은 전쟁, 정치적 탄압, 재해재난, 가난 등 리스크라 통칭할 수 있다. 즉 현대 문명사회에서 자유란 리스크가 허용 가능한 수준으로 제거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은 수백 년간의 모진 고생 끝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우선 지정학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을 억누르고 위협할 수 있는 실질적 위협은 줄어들고 있다. 둘째, 과학기술과 시장의 발전으로 예기치 못한 사고와 재난으로부터 국민들은 어느 정도 보호받게 됐다. 의료수준과 안전공학, 보험시장 등이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고 있다. 셋째,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남부럽지 않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다. 넷째,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해 상당한 수준의 경제부국이 됐고 이런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진정한 자유를 이루려면 이제 어떤 과제가 남았는가? 필자 눈에는 두 가지 장애가 있고, 그 장애를 극복하는 시대적 과제는 규제개혁이라고 믿는다. 첫 번째 장애는 과도한 공공부문이다. 즉, 개인보다 국가가 너무 강하다. 국가는 우리나라가 그간 이룬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미래의 성취를 위해서는 물러설 때가 됐다. 특히 우리나라 규제의 고유한 특징은 국가가 시장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민간부문이 낙후돼 있었기에 하루빨리 현대화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 설계가 규제로 남아 있어 민간부문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나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하는 국가경쟁력지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민간의 뛰어난 활약에 비해 공공부문의 제도와 관행이 최하위 수준이다. 최근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논란을 봐도 그렇다. 많은 국민이 격렬하게 반대한다. 아이들을 학교 교육의 불구덩이 속에 일찍 넣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신받는 공교육을 왜 계속 이런 모습으로 유지해야 하나? 제2, 제3의 민사고와 상산고가 몇십 개 만들어지고, 중학교 수준부터 인공지능(AI)전문학교와 과학기술 고등교육원이 수백 개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한 교육 규제는 낡은 것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도 국가가 개인을 폭압하는 것이다. 개인의 소비 활동과 시간 활용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사소해 보이지만 심각한 침해다. 규제개혁을 통해 낡은 국가의 설계도를 해체하고, 개인이 주도하는 참신하고 발랄한 새로운 길을 창발하고 시도해야 한다.

자유에의 두 번째 장애는 정치·경제·사회적 약자의 열악한 처지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사회적 안전망이 촘촘하지도, 충실하지도 않다. 운이 나쁘거나 실수로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탄력 있게 다시 뛰어오를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하다. 국민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정치·경제·사회적 약자의 어려운 형편을 더욱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규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금의 속성이 있고, 특히 간접세적이다. 약자에게 역진적으로 불리하다는 뜻이다. 개인과 기업의 활동에 드는 부담을 늘리면 가격이 올라가고, 그 부담은 상대적으로 약자들에게 과중해진다.

한편 디지털혁명은 저비용 창업을 가능하게 했다. 4차 산업혁명은 사실상 약자의 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팽배한 진입규제는 약자들의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는다. 의사, 수의사, 변호사, 공인중개사 등 특수직역 온라인플랫폼은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식당들은 온라인플랫폼을 잘 선용하고 있는 데 말이다. 또한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데만 노력하다 보니 노동시장이 경직돼 버렸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말라버린 것은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근로 여건과 급여가 자율적인 협약으로 규율되지 않고 통제적인 규제가 되면서 오히려 약자들에게는 불리한 결과가 된 것이다. 따라서 규제의 강도를 전반적으로 줄이고 개인들의 양심과 공의가 발현될 수 있도록 촉발하는 보편적인 규제개혁이 필요하다. 노예나 굴종의 길이 아니라 자유에의 길로 가려면 규제개혁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