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차기 한국은행 총재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을 어제 지명했다. 그러나 인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과 협의하거나 추천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거세다. 대통령실 이전,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에 이어 신구 권력 간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에 대해 시비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제·금융전문가 경력과 국내외 높은 평가에 비춰 통화정책 수장으로 안성맞춤이고, 언론도 유력 후보로 그를 지목해왔다. 그런데 이런 적임자를 지명하는데도 인선 관련 잡음이 나오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가 “윤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서 했다”고 하자, 당선인 측은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특정 인사를 추천한 바 없다”고 반박하는 볼썽사나운 모양새다.

정권 이양기의 공직 인사는 현 대통령과 당선인 간에 협의나 추천 과정을 거치는 게 순리다. 일례로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이양 과정에서 경찰청장 인선 때 노 정부 측이 관련 인사자료를 당선인 인수위에 넘겨주고, 당선인의 낙점을 받아 노 대통령이 임명했다. 형식은 노 대통령이 했지만, 실질적으론 이 당선인이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 당선인의 인수위가 청와대로부터 인사자료를 넘겨받지 않았다면, 그건 추천과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청와대 측이 인수위 관계자에게 의사 타진한 정도를 갖고 ‘의견 수용을 했다’고 하는 것이면 어불성설이다.

임기가 한 달 반 남은 문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한은 총재를 지명한 것을 보면, 양측 갈등의 핵심 사안인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도 파행을 빚을까 우려된다. 현 정권이 공석인 감사위원 두 자리 중 한 명만 임명해도 감사위원회 의결정족수(4명)를 친여 성향 인물들로 채워, 새 정부 출범 후에도 탈원전, 통계 조작, 청와대 특활비 등에 대한 감사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란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대선이 끝나면 기존 정부는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는 게 관행이요 상식이다. 임기 한 달 반 남은 대통령이 자꾸 인사권에 집착할수록 국민의 의구심만 커질 뿐이다. 국정 공백을 없애는 최선책은 순조롭게 권력을 넘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