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표현의 자유 말한 김수영
그 텍스트 모욕한 소위 대표지식인
상식이 똥 되는 야만이 너무 잦다"

이응준 < 시인·소설가 >
[이응준의 시선] 시인이 악마와 다른 점

올해는 시인 김수영 탄생 100주년이다. 문학의 시대가 저물었다지만, 한국문학이 존재하는 한 기념하지 않을 수 없는 해다.

‘“김일성만세”/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이렇게 시작하는 ‘김일성만세’라는 시가 있다. 1960년 10월 6일 김수영이 쓴 시다. 그는 이것을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 보냈지만 발표되지는 못했다. 전집에는 실려 있다.

그로부터 58년이 흐른 2018년 11월 7일 오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는 ‘백두칭송위원회’가 결성식을 선포하며 춤을 추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대중이 아니었다. 일부 지식인들이 김수영의 저 시를 인용하며 백두칭송위원회를 호위하는 풍경이었다.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 추켜세우는 ‘소위’ 이 시대의 대표지식인도 있었다.

맥락과 핵심을 짓밟은 채 텍스트를 농락하면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무식해서라면 차라리 용서하기가 편한데 알고도 한 짓이라면 분노해야 하고, 그런들 시인 김수영이 당한 모욕은 딱히 보상할 길이 없다. 근데 이 사회에서는 이런 야만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김수영은 ‘단 1%의 제약도 없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모더니스트였다. 그는 4·19혁명의 여운 속에서, 장면 정권의 국가보안법 존치에 반대했다. 그래서 저런 시를 썼다. 손가락(시)으로 달(자유)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그 손가락을 잘라 뱀이라고 우기면 상식은 똥이 된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정일은 금수산의사당, 즉 주석궁을 김일성의 능으로 만들었다. 이 웅장한 화강암 석조 건물은 반도체 공장처럼 위생처리설비를 갖추고 있다. 회전솔로 구두 밑창을 청소하는 구역, 옷에 묻은 먼지를 바람으로 떨어내는 구역, 엑스선기계, 800m 무빙워크와 대리석 복도를 지나면 5m짜리 하얀 김일성 동상 앞에 서게 된다. 강당 중앙 분홍색 빛이 비추는 유리관 속에는 ‘신’의 미라가 안치돼 있다. 이러느라 김정일은 당시로 8억9000만달러를 썼다.

북한에서는 1994년 50만 명 이상, 95년 100만 명, 96년 100만 명 정도가 굶어죽었다. 8억9000만달러는 중국산이나 동남아산 옥수수를 1년간 200만에서 250만t, 3년간 600만t 이상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김정일은 그러지 않았고, 300만 명이 아사했다. 미국 탓이 아니다. 옥수수도 옥수수려니와, 최소한 북한 주민에게 이동과 거주이전이 가능했다면 그들은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게 팩트다. ‘자유’가 없어서 굶어죽은 것이다.

김일성 동상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1972년 ‘태양절’에 공개된 20m 금박 청동상이다. 북한 전역에는 김일성의 동상만큼 많은 강제수용소들이 있다. 이승만 자유당의 부정선거가 나쁘고, 유신 박정희가 나쁘고, 전두환 군부독재가 나쁘니 당연히 북한체제는 해체돼야 한다. 이게 똥이 아니라 상식이다. 광주학살을 못 잊는 자유인이라면 천안문광장 대학살에 눈감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김수영이 살아서 2018년 11월 7일 오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김수영이 그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체포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평소 자신의 성격대로 엄청난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김일성의 신정독재세습 가계를 찬양할 수 있는 사회라면, 대통령을 좀 놀렸다고 대통령의 고소로 청년이 경찰조사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

금지는 금지된 것을 역설적으로 강하게 만든다. 거짓은 ‘거짓을 밝히고 조롱해 줌으로써’ 무력해지는 것이지 거짓을 금지함으로써 해결되지 않는다. 《세기와 더불어》 옆에 고 이명영 교수의 《세기와 더불어 어떻게 날조되었나》가 나란히 놓여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 것이다. 이 글은 100년 전 태어난 내 영웅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이다. 시인에게는, 악마와는 달리, 궁궐 같은 무덤 따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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