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光宇 <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

프리드리히 헤겔은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사상가이며 작가다.

"인간은 역사를 쓰기는 하지만 역사로부터 배우지는 않는다"는 그의 말은 오늘날까지도 종종 회자되는 유명한 표현이다.

헤겔의 이 표현을 가장 실감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가장 많이 배운 사람들의 각축장이자 위기를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금융시장이라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크고 작은 경제위기는 반복돼 왔다.

특히 자본 자유화와 자본시장 개방이 세계화의 급격한 진전과 맞물리게 된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위기의 빈도가 더 잦아지고 있다.

블랙먼데이로 불리는 1987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 이후 지난 20년간 평균 3년에 한번 꼴로 세계금융시장의 혼란이 야기됐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에도 러시아 채무불이행 선언과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엔론 사태 이후의 신용경색 등 국제금융시장의 충격이 이어졌다.

그 기간 중 국내에서는 카드부실로 인한 금융불안과 실물경제의 위축을 추가적으로 경험하기도 했다.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빚어진 글로벌 금융경색은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위시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일단 진정 국면을 맞고 있지만 시장불안의 여진(餘震)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과거 금융위기는 직접적인 원인과 파장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과열과 파열(Boom and Bust)'의 악순환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당면한 서브프라임 사태의 배경도 저금리 체제하에서의 무분별한 대출과 높은 레버리지(차입의존도)가 자산가격의 버블을 키워온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주택시장의 과열이 주택경기의 냉각으로 파국을 맞으면서 주택대출을 담보로 발행된 채권에 투자한 펀드와 이들에게 자금을 공여한 은행들에까지 불똥이 튄 것이다.

결국 위험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대출과 차입,그리고 투자 행태가 계속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러한 금융시장의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있나.

그 이유는 헤겔의 말처럼,또는 '시장의 기억력은 짧다'는 표현같이,과거 뼈 아픈 경험으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 한 것은 위기 반복의 이유가 오히려 과거 경험으로부터의 학습효과,즉 너무 배워서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위기극복 과정에서 도입되는 각종 대책이 흔히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유발해서 책임져야 할 경제주체에게 부실의 비용이 제대로 전가(轉嫁)되지 않는 문제를 야기한다.

무책임하고 무절제한 투자에 따른 고통이 그리 크지 않다는 잘못된 경험과 기대를 낳는 셈이다.

물론 단기성과를 부추기는 과잉경쟁과 투자행태가 여기에 한 몫을 하게 된다.

때문에 흔히 금융위기의 종말은 다음에 다가올 금융위기를 잉태하는 시점이라는 얘기까지 생기게 됐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경제위기가 닥치면 정책결정의 주체로서는 별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미국 부시 대통령의 긴급대책에서도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신용경색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감안하면 적극적인 개입 외에는 현실적,정치적 대안이 없다.

결국 위기의 근본적인 치유는 그만큼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파도가 없는 바다는 죽은 바다다.

금융시장의 파도가 불가피하다면 파도를 잘 타는 것이 경영자와 투자자의 능력일 수도 있고,기회를 위해 위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쓰나미는 막아야 한다.

신용평가기관의 신뢰도도 높여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로서는 더욱 건전한 금융관행의 정립과 국내외 충격에 대한 시장의 흡수능력을 제고하는 것이 급선무다.

단타주의를 탈피한 중장기적인 건전한 투자문화 확립,쏠림현상을 극복하고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금융회사의 경영풍토 조성,시장규율과 사전적 예방을 강조하는 금융정책과 감독체계 구축이 과열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고 시장충격의 파장을 줄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제금융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