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엔진 다운사이징, 즉 배기량 줄이기는 유행처럼 번졌다. 나라별로 강화되는 배출기준을 제조사가 충족하려면 배기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소비자가 혹여 '성능 부족'을 언급할 수 있는 만큼 대안으로 '터보(Turbo)'를 적극 채택했다. 그러니 '터보' 시스템은 효율과 성능을 동시에 높이는 만병통치약처럼 확산돼 갔다. 최근 등장하는 신차 가운데 '터보'가 아닌 엔진을 찾기 어려울 만큼 터보는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복병이 등장했다. 바로 실제 도로주행 배출가스 시험, 즉 'RDE(Real Driving Emission)'의 도입이다. 아니, 도로에서 운행하며 배출가스를 측정하는 제도가 엔진 다운사이징과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RDE 때문에 '터보' 시스템의 운명이 다시 꺾일 것이라는 얘기는 또 무얼까.

이해는 간단하다. 그동안 배출가스 시험은 실내에서 이뤄졌다. 이건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내 시험과 실제 도로 주행 때 배출가스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2017년부터 유럽부터 주행 때 배출가스 또한 측정키로 했다. 물론 한국도 비슷한 시기에 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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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제조사도 대응에 착수했는데, 터보를 배제하고 다시 엔진 배기량을 높이는 방식이다. 터보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높은 온도가 디젤엔진의 질소산화물을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어서다. 질소산화물 외에 다른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해 배기량을 줄였고, 성능에서 터보 효과를 봤지만 터보가 오히려 질소산화물 배출에 불리하게 작용해 실제 도로 시험 때 질소산화물 감축의 방해 요인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점을 파악해 시장분석업체 프로스트앤설리반은 엔진 배기량 축소만으로는 유럽연합의 이산화탄소 및 질소산화물 저감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 디젤은 1.5ℓ 미만, 가솔린은 1.2ℓ 미만 엔진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자 실제 배기량 축소 중단 움직임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르노와 GM, 폭스바겐 등은 엔진 다운사이징과 터보 기술로는 RDE를 통과할 수 없어 차라리 배기량을 다시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르노는 1.6ℓ 디젤엔진 크기를 10% 확대할 계획이며, 폭스바겐 또한 폴로에 탑재하는 3기통 1.4ℓ 디젤엔진을 4기통 1.6ℓ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GM은 오는 2019년부터 1.2ℓ 디젤엔진의 배기량을 25~30% 키울 예정이다.

그런데 배기량을 키우면 이산화탄소는 다시 늘어나고, 질소산화물 배출은 감소하게 된다. 그래서 유럽연합을 비롯한 각 나라별로 어떤 물질의 감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고민이 적지 않다.

고민이 깊어지자 대안은 결국 EV로 모아진다. 유럽연합이 서둘러 EV 확대를 위해 신축 및 재건축 건물에 EV 충전기 의무화를 도입하는 배경이다. 그렇게 보면 내연기관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땅에서 얻는 화석에너지의 종말이 당장이야 오지 않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명이 줄어든다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 태생 자체가 탄소 덩어리이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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