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체성 논란을 벌이고 있다. 당의 강령 개정 소동이 발단이다.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강령 서문에서 ‘노동자’란 단어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이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문구를 빼려 했다가 대표에 출마한 후보자들과 당내 강경파가 당의 정체성 훼손이라고 비판하자 없던 일로 한 것이다. 추미애 후보는 어제 김종인 비대위 대표를 겨냥해 “분열을 선동하고 당의 자부심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대놓고 공격했다. 심지어 당내에선 “굴러들어온 돌이 정체성을 말아먹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에 김 대표는 “노동자라는 단어 하나 빠지는 것을 갖고 난리 치는 정당으로는 집권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내분 양상이다.

더민주는 해프닝이라고 말하지만 그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수면하에 있던 문제가 터진 것이다. 더민주는 지난 4월 총선에서 예상외의 대승을 거두자 내년 대선을 겨냥해 투쟁일변도인 과거와는 다른 중도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렇지만 중도· 비주류 의원과 당원들의 대규모 이탈로 소위 친노·주류세력이 더민주를 더욱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 이번 정체성 논란은 이른바 중도노선에 대해 내부 합의가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비단 대표 후보자들의 인식문제만이 아니다. 김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를 뽑은 이후 더민주가 제멋대로 갈 게 뻔하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종인의 더민주는 중도노선이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동안 보여준 게 없다. 사드 문제만 해도 그렇다. 더민주는 소위 ‘전략적 모호성’을 주장하지만 최근 의원들의 방중 강행에서 보듯 당론은 사드 반대다. 김 대표는 “사드 철회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하면 과연 철회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고 지적했다지만 당 내부에서조차 울림이 없다. 책임 있는 정당이 중도를 공언했다면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쉬쉬하고 입을 가릴 게 아니라 그에 합당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중도론은 위장노선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모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