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새 헌법 초안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14일(현지시간) 군인과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시작됐지만 전국 곳곳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개헌 국민투표를 거부해 온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진압 군경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최소 8명이 사망했다고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이집트 국영TV는 이날 오전 9시 정각 개헌 투표가 시작되기 전부터 투표소마다 유권자들이 수십미터 이상의 줄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장면을 내보냈다.

지난해 7월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 사태 이후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첫 이정표 역할을 할 이번 투표는 이틀간 전체 유권자 5270만명을 대상으로 전국 27개주 3만317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이집트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부는 투표 기간 전국 곳곳의 주요 투표소 주변에 군 병력 16만명과 경찰력 20만명을 배치했다. 투표소 주변 상공에는 처음으로 헬기를 띄워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번 개헌 투표에는 전체 1만5000명의 감시단원이 투입됐다. 이집트 과도정부는 “투표 행위를 방해하는 어떠한 행위에도 관용을 베풀지않겠다”고 경고했다.

이집트 과도정부의 하젬 엘베블라위 총리는 “투표를 하는 것은 국민의 의무”라며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투표 거부 운동이 벌어지고 시위대와 진압 경찰이 충돌하면서 사상자도 속출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전 남부 베니수에프 나세르 투표소 인근에서 무르시지지자와 진압 경찰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청년 1명이 숨졌다. 목격자는 투표소 인근에서 투표 반대 시위를 하던 청년이 총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또 남부 소하그 지역에서는 무르시 지지자 300여명이 투표 반대 시위를 하다 군경과 충돌해 3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정국 혼란 속에 투표율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새 헌법 초안이 국민투표를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투표하러 나온 카이로 시민 옴 사미는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며 “새 헌법에 찬성표를 던지면 이 나라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현 최고 실세인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은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면 올해 치러질 대선 출마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 초안은 군부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이슬람 색채를 약화하는 내용을 담고있어 시민단체,이슬람 세력의 강한 반발을 샀다. 특히 새 헌법에는 군사시설이나 군인을 향해 폭력행위를 행사한 경우 민간인도 군사 법정에 세울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시위 탄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군 예산에 대한 민간의 감시도 사실상 받지 않게 된다.

새 헌법이 통과되면 이집트 과도정부는 올해 중순 이전에 총선과 대선을 각각 치를 예정이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