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성 기자의 와인 칼럼 '우리의 와인' < 2회 >
사진=만화 '소믈리에르' 4권 뒷표지.

사진=만화 '소믈리에르' 4권 뒷표지.

"와인을 좋아하게 된 것은 당신이 계기였습니다."


와인을 다루는 일본 만화 '소믈리에르' 4권 뒷표지에 적힌 글입니다. 이 만화 보신 적 있으신지요?

소믈리에르(sommeliere)는 여성 소믈리에(sommelier)를 뜻합니다. 프랑스어는 같은 뜻이라도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를 다르게 쓰죠. 소믈리에는 중세 유럽에서 식품 보관 및 유통을 담당하던 '솜(Somme)'이라는 직책에서 유래합니다. 영주가 식사하기 전에 음식 안전성을 점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와인 등 술통을 운반하는 일을 담당했기 때문에 그만큼 음식과 술에 해박했던거죠.

19세기부터 프랑스 파리 음식점을 중심으로 와인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소믈리에는 요즘처럼 독립 직업군으로 진화했습니다. 소믈리에는 대게 와인 소믈리에를 뜻합니다. '대게'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요즘 전통주 소믈리에, 물 소믈리에, 위스키 소믈리에 등 와인 외 음료 분야에도 전문성을 가진 소믈리에들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와인 소믈리에는 주로 레스토랑에서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고 서빙합니다. 와인업계 분들은 레스토랑이나 와인가게를 보통 업장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업장의 수준을 살리는 엣지(Edge)이자 영업수익과 직결되는 와인 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소믈리에의 주요 업무입니다.

만화 '소를리에르' 주인공인 이츠키 카나의 직업도 소믈리에, 정확히는 여성이기에 소믈리에르입니다. 유럽의 한 고아원에서 자란 카나가 일본으로 돌아와 레스토랑 '에스푸아'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 와인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소믈리에르'를 읽는 큰 재미는 하고많은 술 중 유독 와인을 좋아하게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카나가 와인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카나가 성장한 유럽 고아원에는 와이너리가 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아원 운영비용을 이곳 와인 생산 수익으로 충당합니다. 카나는 고아원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포도 농사와 와인 양조를 배웠습니다. 카나에게 와인은 그래서 이자 학교였던 셈입니다.

만화에는 실제 모티브가 된 와이너리가 소개됩니다. '빌라 루시츠'라는 이탈리아 와이너리입니다. 빌라 루시츠는 1869년 프랑스 포도품종을 이탈리아 북동부에 처음 도입한 와이너리입니다. 자식이 없었던 부부는 1877년부터 자선사업으로 와이너리 내에 소녀고아원을 세웁니다.

1894년 프랑스인 창업자가 숨을 거둔 뒤 그의 아내는 모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기 전 와이너리를 이탈리아 정부에 기부합니다. 고아원을 계속 지켜달라는 당부와 함께 말입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 와이너리와 고아원에 수녀 아델레를 파견, 부인의 뜻을 잇습니다. 현재도 빌라 루시츠는 비영리 재단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만화 속 등장인물인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성)' 승무원 레이코가 와인을 마시게 된 계기는 흠모하는 항공사 남자 기장 선배였습니다. 승무원과 기장으로 세계 여러 도시를 다니며 와인을 함께 나눈만큼 사랑도 깊어갔죠. 와인은 이들에게 사랑의 술이었습니다.

일본 시골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이즈미야가 와인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고향친구 카타세였습니다. 이들은 어릴 적 고향 바다를 바라보면서 함께 와인을 나눠 마셨습니다. 기어코 이즈미야는 이탈리아 음식 공부에 장래를 겁니다. 히지만 훗날 요리 유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이즈미야는 신세한탄하기에 바쁩니다.

'시골 촌구석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시작한 내가 바보였다'고 자조할 때 카타세가 와인 한병을 꺼내 놓습니다. 어릴적 와인을 좋아하던, 음식을 사랑하던 이즈미야의 '초심'을 깨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이탈리아 음식을, 내가 아니면 내놓을 수 없는 와인과 함께 내놓겠다'던 이즈미야의 그 초심. 와인은 두 남자에게 우정입니다.
사진= '초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

사진= '초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

와인 문외한인 미야우치에게 와인은 '비즈니스'입니다. 3억원짜리 계약 결정권을 쥔 상대회사 부장 접대자리에서 와인과 음식 간 궁합(마리아주·mariage)을 맞추지 못해 계약이 어그러졌다고 자책 중입니다. 계약 칼자루를 쥔 카마타 부장은 와인 애호가라 비즈니스 에티켓이 없다고 미야우치에게 화를 버럭 냈거든요. 미야우치는 카나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와인과 음식을 통해 카마타 부장을 재설득합니다. 재밌는 건 카마타 부장이 와인 관련 비즈니스 에티켓에 예민했던 이유입니다. 카마타 부장도 사회 초년병 시절 비즈니스 차 와인 모임에 나갔다가 마리아주 관련 '무식' 지적에 여러번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더군요. 와인은 이들에게 비즈니스 더 나아가 사회적 성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주 '우리의 와인' 1회(와인 한병에 책보다 많은 철학이 담긴 이유)가 시작된 뒤 몇몇 독자분들로부터 왜 칼럼 제목이 '우리의 와인'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소믈리에르 이야기를 앞서 드린 이유는 '우리의 와인'을 설명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처음 와인을 마십니다. 사업상 중요한 비즈니스 자리에서, 흠모하는 이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레스토랑에서, 누군가는 친구들과 변치않는 우정을 확인하는 술집에서 말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독주나 폭탄주를 많이 마시는 직장인의 경우 건강을 염려해 처음 와인을 입에 대기도 합니다. 요즘은 파티나 회식 자리에도 와인이 많이 등장하는 추세라 자연스레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죠.

'우리의 와인'은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와인 그리고 와인을 함께 나누는 사람, 그들의 인생이야기를 다루고자 합니다.

와인과 사람이 만날 때 비로소 피어나는 인생의 소소한 향기들을 쫓아가보려고 합니다.

사진=와인의 향을 머금고 있는 코르크 마개들.

사진=와인의 향을 머금고 있는 코르크 마개들.

와인 업계에서 일하는 전문가 및 와인 애호가들과 함께 고민하는 칼럼으로 꾸미려고 합니다. 와인에 관심 없는 분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로 채우고 싶습니다. 굳이 와인이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사물들의 존재 근간에는 우리네 살아가는 삶의 이치들이 녹아있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와인'이라는 이름처럼 여러분 앞에 놓인 와인 한병 한병 곁에는 '우리'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싸구려 와인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눈다면 그 맛과 추억은 유명 와인 못지않게 훌륭하고 오래 갑니다. 반면 외로이 홀로 마신다면 수백만원짜리 와인일지라도 그 화려한 향기와 추억은 이내 앙상해지기 쉽습니다.

'우리의 와인'은 여러분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는 모든 와인을 지지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놓인 그 와인을 마시면서 나중에 다시 함께 나누고픈 그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분명 그 사람을 아끼고 있습니다.

p.s.1 미리 고백드리건데, 저는 와인 전문가가 아닙니다. 와인 경험도 전문가 분들 수준으로 다채롭지 못합니다. 다만 일상에서 좋은 와인들을 발견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칼럼이 회를 거듭해 어느날 제가 와인 전문가로 불릴 수 있다면, 그땐 아마 여러분들도 함께 와인 전문가가 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와인'에 많은 관심과 따끔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p.s. 2 김민기 <가을편지>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밤, 사랑하는 사람들과 와인 한잔 나눠보세요.(^^)


한경닷컴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 트위터 @mean_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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