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은행장, 관료, 대기업 임원 등 명망가들이 은퇴 후 사모펀드 시장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이들의 성적표는 어떨까. 의외로 ‘성공’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올해로 출범 10년차를 맞은 사모펀드 시장이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서 이름만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사모펀드 회장 명함을 새롭게 만드는 대표적 직군은 은행장들이다. 이덕훈 전 행장의 키스톤PE를 비롯해 민유성 회장이 2011년 KDB금융지주 회장직에서 물러난 직후 티스톤파트너스에 합류했다. 행장 출신은 아니지만 김진호 전 산은금융지주 재무담당 전무(CFO)가 올해 SG PE를 설립했다. PEF 업계에선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사모펀드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은행장 외에 윤영각 전 삼정KPMG 회장이 올초 파인스트리트 금융그룹을 설립했고, 이기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해 KTI라는 사모펀드를 만들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으로는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대표에 이어 두 번째다. 관료에서 사모펀드 대표로 변신한 사례로는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에 이어 구본진 전 기획재정부 차관의 트루벤 인베스트먼트가 올해 설립됐다.

‘스타’들이 잇따라 뛰어들고 있는 것에 비해 성공 확률은 낮은 편이다. 진대제, 변양호 대표를 제외하면 출발 단계에서부터 좌초됐거나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다. 키스톤PE는 금융감독원에 펀드 등록조차 못했다.

이기태 회장도 개인 재산을 운용하는 ‘패밀리 오피스’ 형태에 머물러 있을 뿐 사모펀드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기관 자금을 끌어들이는 데엔 실패했다.

명망가들이 주도하는 사모펀드 성적이 신통치 않은 이유는 경쟁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모펀드 출범 초기엔 모두가 처음 시작하는 상황이라 펀드 출자자들로선 명망가들이나 은행, 증권 계열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시장이 조성된 지 10년 가까이 지나면서 MBK파트너스 같은 사모펀드 전문가들이 생기고, 운용사 간에도 옥석이 가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