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들이 상장지수펀드(ETF) 보수를 내리고 있다. 일반 주식형펀드에 비해 거래비용이 저렴하다는 ETF의 장점이 더욱 커지는 셈이다. 투자자들로선 보수가 낮아지는 만큼 실질 수익률을 높일 수 있어 반가운 소식이다.

보수인하 폭은 0.1%포인트 단위에 불과하지만 투자 기간이 5년 이상으로 길어지면 보수 차이에 따른 수익률 격차가 1%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초저금리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주식시장도 횡보를 거듭하고 있어 약간의 보수 차이에도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운용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ETF 시장을 둘러싼 운용사 간 경쟁이 치열해져 ETF 보수 인하는 지속될 전망이다.

"5년 수익률 1%p 차이가 어디냐…" 보수 인하 경쟁에 웃는 투자자들

○한국운용 내리자 삼성운용도 인하 검토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ETF 보수인하 경쟁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TIGER200 ETF의 총보수율을 0.34%에서 0.15%로 낮췄다.

올 들어선 한화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연이어 ETF 보수를 내렸다. 한화자산운용은 지난 8월 7개 ETF를 상장하면서 총보수율을 0.2%대로 정했다. 업계 평균보다 0.1%포인트가량 낮은 수준이다.

한국운용은 지난달 8개 ETF의 총보수율을 순자산의 0.25~0.7%에서 0.15~0.3%로 인하했다. 지수 추종형인 KINDEX200의 총보수율은 0.3%에서 0.15%로, 지수 상승률보다 2배 수익을 추구하는 KINDEX레버리지는 0.7%에서 0.3%로 각각 낮아졌다. KINDEX200의 총보수율은 경쟁대상인 삼성자산운용의 KODEX200(0.35%)보다 0.2%포인트 낮은 업계 최저 수준이다.

국내 ETF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자산운용도 보수 인하를 검토 중이다. 배재규 삼성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은 최근 “투자자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차원에서 선별적 보수 인하를 계획하고 있다”며 “연내에 장기투자상품부터 순차적으로 보수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용사들의 보수 인하는 실제로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보수를 내린 미래에셋운용은 올 들어 ETF 순자산을 40%가량 늘렸다. 미래에셋운용은 15%의 점유율로 ETF 시장 2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운용의 KINDEX 200도 보수 인하 후 하루 평균 거래량이 2배 가까이 늘었다.

"5년 수익률 1%p 차이가 어디냐…" 보수 인하 경쟁에 웃는 투자자들

○ETF 규모 커져 수수료 인하 여력 생겨

자산운용사들이 연이어 ETF 보수를 내리는 것은 ETF시장이 운용업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 들어 주식형 펀드에서는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코스피지수보다 높은 수익률을 낸 액티브펀드가 15%에 불과할 정도로 운용 성과가 부진한 탓이다.

반면 ETF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횡보장에서 시장 평균 수준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는 데다 보수도 저렴하다는 ETF의 특징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으로 부각됐다. 이런 상황에서 ETF 시장에 늦게 뛰어든 후발 운용사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보수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증시가 횡보를 거듭하면서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을 얻기 어려워진 점도 보수가 낮아지는 배경이다. 운용보수를 똑같이 1% 낸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기대수익률이 연 10% 이상일 때와 지금처럼 연 6~8%에 그칠 때 간에는 투자자들이 느끼는 부담이 다르다는 것이다. 서정두 한국운용 AI운용본부장은 “ETF 시장 규모가 커져 운용사가 비용 절감을 통해 보수를 낮출 여지도 커졌다”며 “투자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많은 수익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기대수익률이 낮아진 만큼 운용보수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국내 ETF 보수율이 선진국보다 비싸다는 점을 들어 수수료 인하를 직·간접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ETF 시장의 건전한 발전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가중평균 방식으로 계산한 국내 ETF의 평균 보수율은 0.35%로 미국 증시 ETF의 0.18%보다 2배가량 높다.

○해외 운용사도 보수인하 경쟁

ETF 보수인하 경쟁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 최대 ETF 운용사 블랙록은 지난 15일 6개 ETF의 총보수율을 낮추고 기존 ETF보다 보수가 낮은 4개 ETF를 신규 출시했다.

블랙록이 보수를 낮춘 것은 경쟁사인 뱅가드의 공격적인 보수인하 전략에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뱅가드는 2001년 ETF 시장에 진입한 이래 2~3년에 한 번 보수를 인하했다. 뱅가드의 시장지수 추종형 ETF 총보수율은 2001년 0.15%에서 현재 0.05%로 낮아졌다. 이에 비해 블랙록은 유사한 ETF의 총보수율을 10년 이상 0.2%로 유지했다.

일부에서는 보수 인하 경쟁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견도 나온다. 운용사들이 보수 이외에 ETF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보수가 지나치게 낮아지면 업계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 결국 ‘박리다매’가 가능한 대형 운용사들이 시장을 독식할 가능성도 있다. 운용사들이 ETF로 돈을 벌기가 어려워지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동기가 약해져 투자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국내 ETF 보수가 외국보다 비싸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시장 여건에 차이가 있어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ETF의 평균 총보수율이 국내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유형별로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 증시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ETF의 평균 보수율은 0.07%에 불과하지만 시장 지수와 반대로 움직이도록 설정된 인버스형 ETF의 평균 보수율은 0.92%로 높은 편이다. 연태훈 금융연구원 금융시장제도연구실장은 “미국과 유럽의 ETF 운용 보수율이 낮은 것은 운용사 간 경쟁의 결과”라며 “시장구조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과점 구도가 형성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