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개를 채취하는 자동기기를 보고 힌트를 얻었어요. 동네 철공소를 찾아가 머리를 맞댄 끝에 (컨베이어벨트와 비슷한) 미더덕 채취용 기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죠. 일일이 손으로 따던 작업시간이 확 줄어들더군요.”

국내 첫 미더덕 양식사업자인 최윤덕 미더덕영어조합(창원 진동면) 이사(51·사진)의 목소리는 밝았다. 39년 만에 부활된 어업인의 날(4월1일)을 맞아 30일 대통령표창을 받은 그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뭐라 말로 표현이 되겠습니까”라고 껄껄 웃었다.

최 이사는 그러나 미더덕 양식이 국내에서 정식 사업으로 인정받기까지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미더덕 양식을 처음 시작한 1996년만 해도 미더덕 양식은 불법으로 간주됐습니다. 창원 진동면 앞바다 일대에서 1970년대부터 이뤄지던 굴 피조개 홍합 등의 생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는 어민들과 함께 미더덕이 피조개 등의 양식에 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최 이사는 “3년 뒤인 1999년 정부로부터 미더덕이 양식 품목으로 적합하다는 인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최 이사는 이어 미더덕 채취를 기계화하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농업은 농협 등을 통해 농사기기를 지원받기도 하지만 어업은 그런 혜택이 거의 없다”며 “동네 철공소를 찾아가 함께 기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더덕 양식 사업을 대형화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미더덕영어조합은 국내 양식 미더덕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고 있지만 굴 등 다른 품목에 비해 그 규모가 영세하다는 게 최 이사의 설명이다. 그는 “미더덕 양식 어민들은 대부분 생계형”이라며 “개인이 20~30㏊를 갖고 있는 굴·홍합 같은 기업형 양식에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유가 급등에 따른 고충도 털어놨다. “나흘 정도 쓸 수 있는 200ℓ 기름(면세 고유황경유) 한 드럼에 20만원이 넘는다”며 “자유무역협정(FTA)보다 더 무서운 게 기름값”이라고 말했다.

39년 만에 되살아난 제1회 어업인의 날 기념식이 이날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렸다. 어업인의 날은 1969년 4월1일 어민의 날로 시작해 1973년 권농의 날과 통합됐다. 1996년(11월11일)에는 농어업인의 날로 합쳐졌다. 기념식에선 어업 발전 공로자에 대한 포상도 있었다. 이종구 수협중앙회 회장이 40여년간 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 배기일 수산무역협회장은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어 김수길 경남수산업경영인연합회 고문, 이광남 한국수산회수산정책연구소장, 홍석희 제주특별자치도어선주협의회장이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최 이사를 비롯한 14명은 대통령 및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수산업은 생산량 세계 12위, 수출액은 23억달러로 세계 13위 수준”이라며 “어업인의 날 부활을 계기로 어업인의 자긍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