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은 식품 패션 등 소비재를 만드는 기업들 사이에서 ‘갑(甲) 중의 갑’으로 불린다. 높은 매장 수수료를 내고도 백화점에 매장을 내거나 제품을 납품하려는 제조업체들이 줄을 선다. 이 백화점에서 팔리는 상품이라는 사실 자체가 마케팅 포인트가 되어서다.

[한경데스크] 롯데가 삼고초려한 동네빵집
그런 롯데백화점이 삼고초려 끝에 매장까지 만들어준 곳이 있다. 대형 브랜드도 아니다. 대전 은행동의 ‘동네 빵집’ 성심당(聖心堂)이다. 롯데가 성심당을 찾은 것은 작년 9월. 대전점 지하 1층, ‘포숑’이라는 프랑스 베이커리 매장 자리에 대신 들어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포숑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 씨가 운영하던 매장이었다. 포숑 매출이 기대에 못 미치자 대전 토착빵집인 성심당을 ‘구원투수’로 삼은 것. 임영진 성심당 사장은 고민에 빠졌다. 대전에서 매장 한 곳만 56년간 운영해왔을 뿐, 분점이나 가맹점을 내본 경험이 없었다. 롯데의 설득은 계속됐다. 빵맛만큼은 자신 있던 임 사장은 결심했다. “한 번 해보지 뭐~.”

하루 매출 600만원 '대박'

롯데와 임 사장의 기대는 ‘대박’으로 나타났다. 작년 12월 중순 문을 연 롯데백화점 성심당은 지난달 말까지 하루 매출이 500만~600만원에 이르는 ‘히트 빵집’이 됐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포숑 하루 매출(150만원 안팎)의 4배 수준이다. 빵 프랜차이즈 중 장사가 가장 잘된다는 파리바게뜨 가맹점의 평균 매출(하루 180여만원)을 훨씬 웃돈다.

성심당의 경쟁력은 뭘까. 사회 이슈가 된 골목상권 소상공인의 해법을 성심당에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임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결은 평범했다. 빵맛이 핵심이라고 했다. 빵집 주인이라면 누구나 내놓을 법한 답이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다른 대답이 보였다. 임 사장이 말한 ‘빵 맛’은 쉽게 얻어지는 맛이 아니었다. 1956년 부친이 시작한 제빵 사업의 노하우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58세인 임 사장은 지금도 도쿄 등에서 열리는 제빵전시회와 프랑스의 ‘월드패스트리컵’ 등의 행사를 빠짐없이 참관한다. 매년 직원 10여명을 해외 제빵 전시회에 보낸다.

신선도·사랑방 서비스로 승부

임 사장은 빵 반죽 숙성을 위한 발효균도 일부는 직접 개발한다고 했다. 건포도 요구르트 사과 등을 이용한 천연 발효균을 제품에 맞게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초엔 일본 제빵전문가를 초청, 닷새간 직원들과 함께 신제품을 개발했다. 안동의 맘모스제과점과 함께 국내 빵집 중 처음으로 세계적인 명소·맛집 책자인 미슐랭 가이드 한국편에 실린 것은 이런 노력 덕분이었다.

[한경데스크] 롯데가 삼고초려한 동네빵집
대기업 빵집들이 최근 잇따라 철수를 선언했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생계형 동네빵집과 도심 빌딩·호텔 등에 입점한 대기업 빵집은 애초부터 경쟁관계가 아니라는 시각이 많다. 재계 2, 3세가 빵집 사업에서 손을 뗀다고 하더라도 동네빵집의 경영여건이 크게 달라지기 힘들 것이란 얘기다. 더구나 정년을 맞은 ‘베이비 부머’(1955~1963년생)가 창업시장으로 밀려들고 있다. 창업시장 내 생존경쟁은 더 심해질 게 분명하다.

‘업(業)의 본질’을 이해하고 기본에 충실한다는 성심당의 평범한 비법이 갈수록 늘어나는 생계형 창업자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빵집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그건 재료의 신선도를 바탕으로 한 맛 차별화와 동네 사랑방과 같은 서비스입니다.”(임 사장)

김철수 생활경제부 차장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