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 용


<한국경제연구원장>


한국경제신문 7월13일자 A38면

1981년 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기간의 정함이 없거나 기간을 2년 미만으로 정한 임대차는 그 기간을 2년으로 본다"로 개정돼 1989년 국회를 통과했다.

서민들의 주거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당시 서민 정당을 표방했던 평화민주당이 주도했다.

그러자 전 · 월세 가격이 치솟았다.

당시 500만원 하던 서울의 반(半)지하 단칸방 전세 가격이 800만~900만원으로 올랐다.

임대주택 사정이 나쁘기도 했지만 수요는 늘어난 반면 공급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전세 자금을 마련할 수 없어 갈 곳이 없던 일부 서민들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서민들의 주거 생활을 안정시켜 주겠다는 선한 의도가 바로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2007년 7월1일 시행된 이른바 비정규직법으로 불리는'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그럴 사유가 없거나 소멸되는 경우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때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돼 있다.

곧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으로 본다.

문제는 기간제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이 법이 의도하지 않게 지금 이들을 해고 위험에 처하도록 만들었다.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의도한 법률로 말미암아 비정규직은 그나마 다니던 직장마저 잃게 된 것이다.

기업의 부담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의당 그래야 한다는 '거룩한 당위'를 앞세운 입법이 어떻게 의도하지 않은 황당한 결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른바 약자를 보호하려는 선한 의도(intended good)가 아무리 거룩하더라도, 이로 말미암아 보호하려는 바로 그 대상을 죽음으로 내몬다거나 직장을 잃게 한다면,이는 의도하지 않은 악(unintended evil)이다.

'지적 미성숙'의 결과다.

이런 지적 미성숙이 이 땅에 천국을 만들려는 선한 의도를 낳고,그 의도는 어김없이 지옥을 만든다.

그리고 그 지옥의 끝자락에는 숱한 지식인과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며 지상 천국 건설이라는 야심 찬 목표로 출발했던 사회주의가 있다.

인류의 물질문명은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발전했다.

그러나 인간의 DNA는 그에 상응하게 진화하지 않고 씨 · 부족 사회에서나 통하는 '원시 감정'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대 사회에서 전 세계 사람들을 협동으로 인도하여 물질적 풍요를 이룩해 내는 시장경제 체제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바뀌지 않은 원시 감정 때문이다.

원시 감정에 바탕을 둔 주장들이 쉽게 정책화되는 배경에는 선거에서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의 인기 영합주의가 있다.

인기 영합주의가 민주적 의사 결정과 결합되면 쉽게 대중들의 원시 감정을 파고든다.

좌파 지식인들은 이런 대중들의 원시 감정을 자극하는 용어를 만들거나 본래의 용어를 변색시키는 데 상당한 소질을 갖고 있다.

좌파들이 강한 응집력을 보이는 대중 집회를 선동적으로 잘 이끌어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 운동이 가져온 당혹스러운 결과는 지적 미성숙을 확인해 줄 뿐이다.

임대 기간을 연장한 임대차보호법이나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한 비정규직보호법도 지적 미성숙에서 연유한 실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원시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인들의 선동에 다수의 대중이 동조하는 한,사회가 혼란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대중들에 대한 꾸준한 교육과,정치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을 제도적으로 줄여 나가는 것이 사회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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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대중의 ‘지적 미성숙’을 극복해야 선진 사회로 갈 수 있어

이른바 비정규직법으로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갖가지 부작용을 앓고 있다.

2년 전 이 법을 입법할 당시에는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뜻 아래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이 법의 역효과 때문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법을 제정할 때 기업의 부담 능력과 경제 원리를 알지 못하고 '거룩한 당위'를 앞세워 법만 만들고 보자는 속셈이 강했던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약자를 보호하려는 선한 의도로 행한 행위가 의도하지 않은 악을 만드는 이유는 사회의 '지적 미성숙'에 있다고 간주한다.

시장경제 체제하에 확인되는 원리를 대중들이 잊어버린 채 인기 영합주의에 매몰되면 이러한 황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류의 물질문명이 발전한 만큼 인간의 DNA가 원시 감정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원시 감정의 결과는 일반인들이 시장경제 체제에 거부감을 갖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분야는 이러한 원시 감정과 정치와의 관계이다.

원시 감정에 바탕을 둔 주장들이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쉽게 정책화되고 있고 이러한 배경에는 선거에서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의 인기 영합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인기 영합주의가 민주적 의사 결정과 결합되면 쉽게 대중들의 원시 감정을 파고들 수 있고 사회가 감정만을 자극하며 지적 미성숙이 극대화되면 사회주의로도 변질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는 특히 좌파 지식인이 대중들의 원시 감정을 자극하는 용어를 만들거나 본래의 용어를 변색시키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들이 가져다 준 결과는 불행히도 지적 미성숙을 확인해 주고 사회적인 악만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

민주주의 사회에서 원시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인들의 선동에 다수의 대중이 동조하는 한, 사회는 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저자는 따라서 대중들에 대한 꾸준한 교육과 정치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을 제도적으로 줄여 나가는 것이 사회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끝맺고 있다.

이 칼럼은 결국 대중의 지적 미성숙을 극복하는 길이 선진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며 이를 위해 민주 사회의 원리와 시장 경제의 원리를 비롯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