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기지. 이글 착륙했다"

미국인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달 착륙선 이글호를 달 표면에 착륙시킨 뒤 휴스턴의 관제센터에 이 같은 첫 송신을 하고 달에 첫발을 내디딘 지 20일로 40년이 된다.

암스트롱이 이글호의 사다리를 내려와 달에 인간의 첫 발자국을 찍는 역사적인 장면은 전 세계에서 5억명이 숨죽이고 지켜봤다.

인류를 대표해 달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인류는 달착륙을 통해 꿈을 현실화하고 우주를 향해 위대한 도약을 했지만 그 출발점이 냉전적 사고였던 만큼 냉전종식 이후에는 추진력을 잃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꿈을 향한 시련과 도전
미국의 아폴로 계획은 존 F.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5월 의회에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다가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겠다고 약속하면서 시작됐다.

이런 약속에는 냉전시대의 경쟁상대였던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고 1961년 4월에는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를 발사,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하면서 앞서 나가고 있는 데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이렇게 시작된 아폴로 계획은 순조롭지만은 않았으며, 1967년 1월에는 아폴로1호 발사에 앞서 시험 도중 화재가 발생해 그 안에 타고있던 우주인 3명이 모두 사망하는 참사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1968년 12월 아폴로 8호를 쏘아 올려 달 궤도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고 이듬해 아폴로 계획의 다섯 번째 유인우주 비행이자 세 번째 달 탐사인 아폴로 11호를 통해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아폴로 11호는 7월16일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마이크 콜린스 등 3명의 우주비행사를 싣고 지구를 떠난 지 나흘 만인 7월20일 달 궤도에 도착했으며, 3명의 승무원 중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 착륙선 이글호를 타고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다.

이후 아폴로 계획은 10명의 우주비행사를 더 달에 보냈다.

◇우주경쟁의 판도를 바꾸다
암스트롱의 "작은 한 걸음"은 당시 미국에 앞서있던 소련에 엄청난 타격을 주면서 우주 경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케네디 정부는 아폴로계획을 통해 소련을 무섭게 따라잡기 시작했고 결국 가장 먼저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킴으로써 소련이 이뤄놓은 성과들을 무색하게 했다.

소련은 당시 우주에서의 성취를 힘의 척도로 여겼으며 케네디 대통령은 이를 소련만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연방예산의 5% 이상을 미항공우주국(NASA)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절정기때는 40만명 이상이 아폴로 계획에 고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더이상 유인 우주선을 보내지 않았고 1998년부터는 달 탐사용 인공위성 발사도 중단했다.

소련 역시 1976년 루나 24호를 마지막으로 달 탐사를 중단했다.

우주경쟁에서 승부가 갈리고, 냉전이 끝나면서 양국 간 과시성 우주경쟁 역시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우주비행은 350km 상공의 국제우주정거장(ISS) 주변으로 국한돼 있다.

미국과 러시아 역시 50여년간 저궤도 여행만 반복하고 있다.

프란시스 로카르드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의 태양계 탐사 담당 천체물리학자는 AFP통신과의 회견에서 로봇이 실제 우주 탐사를 도맡아 하는 동안 인류는 틀에 박힌 일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 나라에서 유인 우주선 발사에 무관심한데다 ISS로의 비행 역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흥미로운 발견을 거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불붙는 달 탐사 경쟁
그러나 근 30년간 정체돼 있던 달 탐사 경쟁은 최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우주과학기술에 눈을 돌리면서 다시 점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2007년 10월 최초의 달 탐사위성 '창어((嫦娥) 1호' 발사에 성공하며 중화민족의 '천 년의 꿈'을 달성했다.

중국은 내년 두 번째 달 탐사위성인 창어 2호를 발사하고 이르면 3년 후 창어 3호의 달 착륙을 추진키로 했다.

또 2011년 우주도킹, 2014년 우주정거장 건설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는 등 우주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은 2007년 달 탐사위성 '가구야', 인도는 2008년 '찬드라얀 1호'를 발사해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미국은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참사를 계기로 2010년까지 우주왕복선을 점차적으로 퇴출시키고 대신 달 유인탐사를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이 2004년 출범시킨 이른바 '콘스털레이션' 프로그램은 2020년까지 달에 유인기지를 세워 유인 화성탐사의 발진기지로 삼겠다는 목표를 갖고있다.

이런 방향 전환에는 우주왕복선이 ISS 건설에 필요한 중장비와 승무원을 실어나르며 저궤도 비행에 치중하는 동안 중국, 인도 등이 강력한 우주경쟁 상대국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석인 NASA 국장 임명이 지연되고 있는데다 예산 증액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어 미국의 우주연구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 유인우주비행 계획을 재검토 중이며 이 위원회는 8월 말까지 관련 권고안을 낼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e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