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와인과 식초는 병에 붙은 라벨로 구별할 수 있다. "

'톰 소여의 모험'으로 친숙한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독일 와인의 산도가 식초에 버금가게 높은 점을 살짝 비꼰 것이다. 실제로 라벨이 없다면 와인 병 속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와인인지,맹물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과거 와인 생산자들은 라벨을 내부관리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와인 라벨은 마케팅의 핵심 요소로 새롭게 조명을 받는다.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이력서 차원을 넘어 와인 전체를 대표하는 얼굴로,잠재적 소비자와 직접 대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 것이다.

최초의 와인 라벨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러 개의 단지 안에 포도즙을 넣은 다음 원산지와 품질의 식별을 위해 포도밭 위치,만든 사람 그리고 생산 연도 등을 간단하게 적어 놓았다. 이런 종류의 라벨은 18세기에도 사용됐다.

샴페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동 페리뇽은 생산 연도와 원산지,품종 등 필요한 정보를 양피지에 기록해 병목에 가죽 끈으로 매달았다.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손으로 쓴 와인 라벨이 처음 사용됐다. 피렌체의 식물학자 미켈리가 열심히 수고한 덕에 우리는 그가 마셨던 와인이 '베르데키오'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와인 제조에 질적 양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다양한 포도품종으로 만든 와인들이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저장 용기로는 규격화된 유리병이 등장했다. 따라서 여러 지역에서 생산되어 비슷한 병에 담긴 와인들과 구별하기 위해 원산지와 품질 수준에 대해 확실하게 소비자들에게 알릴 필요성이 커졌다. 또한 와인이 대량 생산되면서 필요한 라벨의 수량도 많아졌다.

이런 시대적인 요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라벨은 1798년 이후부터 사용됐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세네펠더가 발명한 석판인쇄술을 활용해 자유롭게 디자인한 라벨을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1860년에는 병 위에 잘 붙는 풀이 발명되면서,라벨의 보편화는 급격히 진행됐다.

19세기에는 국가별로 다양한 디자인의 라벨이 사용됐다. 독일에서는 하얀 네모 종이 위에 단순하게 종류만 표기한 것이 주류를 이룬 반면,이탈리아에서는 생활풍습이나 풍경 등을 그린 라벨이 많았다. 프랑스는 유명 샴페인하우스를 중심으로 금색,은색,동색,파란색 라벨로 등급을 차별화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이탈리아 같은 구대륙 와인 라벨에는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단순하고 무게감 있는 디자인이 많다. 반면 미국,호주 등 신대륙 와인들은 대형마트 등에서 많이 팔리는 점을 고려해 눈에 띄는 디자인을 선호한다.

라벨 디자인을 통해 와인의 이미지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유명한 예술가들이 참여한 독창적인 라벨까지 등장했다.

가장 선구적인 것은 보르도의 유명한 와이너리인 '샤토 무통 로쉴드'다. 1922년 가문의 와이너리를 물려받은 '바론 필립 로쉴드'는 샤토 이름만 있는 단순한 와인 라벨에 실망했다. 포스터 화가였던 장 칼루에게 부탁해 무통을 의미하는 양(sheep)과 로쉴드 가문의 상징인 다섯 화살이 합성된 디자인을 1924년 빈티지에 붙였다.

1945년 연합군의 승리를 기념해 월계관과 'V'자가 있는 필립 줄리앙의 디자인을 넣은 것을 시작으로 매년 피카소,칸딘스키,샤갈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넣은 라벨을 선보이고 있다. 호주의 '루윈 에스테이트'에서도 자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넣은 라벨의 '아트 시리즈'를 출시하고 있다.

라벨의 재질도 다양하게 발전됐다. 종이가 일반적이지만,샴페인처럼 얼음물에 담가서 서빙하는 와인에는 방수가 되는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것도 많다. 라벨의 종류로는 앞면 주 라벨과 뒷면 보조 라벨이 있다. 예외적으로 매년 생산 연도만 바꾸는 목 라벨도 있었지만,요사이는 매우 드물다.

앞면 라벨에 표기되는 필수항목들은 국가마다 조금씩 다른데 뒷면에는 생산자에 대한 소개,사용된 포도품종,중요한 아로마 및 서빙시 유의점 등을 기재하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럽으로 수입되는 모든 외국산 와인들은 너무도 당연한 '와인'이라는 단어를 라벨에 꼭 표기해야 한다.

반면 유럽산 와인의 라벨에서는 아직도 포도품종 같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거나 최소한 읽는 법을 알아야 원하는 와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와인 라벨 모으는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빈티툴리스트'(vintitulist)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개인적으로 '와인저널'을 가지고 마신 와인의 라벨과 함께 시음 소감도 곁들여 당시의 분위기와 추억의 잔상을 오래 기억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최승우 와인칼럼니스트 · 여유공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