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 도입부에 주인공 장동건과 원빈이 전차를 잡기 위해 뛰어가는 장면 뒤로 '조선중외제약소'라는 광고가 벽에 붙어 있다.

'조선중외제약소'는 중외제약의 옛 이름.이 회사의 오랜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외제약은 1945년 탄생한 '해방둥이' 기업이다.

X-레이,페니실린과 더불어 20세기 3대 의료 혁명으로 꼽히는 수액(링거)을 국내 최초로 개발,현재 국내 수액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까지 만들어 낸 수액만 총 14억 개에 달한다.

또 항암제 항생제 등 국내 제약회사 중 가장 많은 360여 종의 전문 의약품(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의약품)을 보유하고 있다.

덕분에 중외제약은 1976년 상장 이후 30년 연속 흑자 배당을 할 정도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01년 중외는 결정적 위기에 봉착한다.

수액을 제외하고 이 회사에서 판매하고 있는 전문 의약품의 20~30%를 20년간 공급해 오던 다국적 제약사 MSD(머크샤프&돔)가 2002년부터 한국 시장에서 제품을 독자 판매하겠다고 통보해 온 것.중외로서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2001년 갓 대표로 취임한 이경하 사장(44)은 "그때 앞이 캄캄했다"고 회고했다.

이 사장은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MSD와의 결별이 결과적으로 중외제약에는 '보약'이 됐다"고 평가했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탄탄히 다질 수 있었다는 얘기다.
[기업속으로] 중외제약‥다국적 MSD社와 결별 "藥 됐어요"
◆'보약'이 된 MSD와의 결별

MSD와의 독점판매 계약 중단은 당장에는 혹독한 시련이었다.

2001년 당시 회사의 전체 매출 2416억원 중 320억원이 MSD 제품 판매에서 나왔기 때문.특히 중외가 독자 브랜드로 키운 주력 제품 중 상당수가 날아가 버렸다.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첫 해인 2002년 사업 계획을 짤 때 '정말 막막했다'고 이 대표는 털어놨다.

"당시 최대 매출을 기록하던 위장관 개선제인 가나톤 매출이 50억원이 채 안 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제품 공백이 생기다 보니 2002년 가나톤 매출이 최소 300억원은 돼야 한다는 목표를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현 가능성은 따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MSD와의 제휴 중단은 중외의 성장 정체로 나타났다.

2002년까지 10%를 웃돌던 매출 증가율이 2003년에는 5.3%로 반토막이 났다.

2004년 7.4%로 소폭 회복 기미를 보이더니 2005년에는 2.7%로 곤두박질 쳤다.

그 사이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이 무섭게 성장,중외제약을 추월했다.

그 결과 중외제약의 매출 순위는 3위(2003년)에서 5위(2005년)로 미끄럼을 탔다.

성장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고심하던 2005년 회사는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당시 중외제약은 '2010년 매출 1조원,경상이익 1000억원의 글로벌 헬스케어 컴퍼니'라는 장기 비전을 설정했다.

2005년 매출이 3114억원이었으니 5년 만에 매출을 3배로 늘리겠다는 목표였다.

'장밋빛 전망'이란 얘기가 나올 법도 했다.

이 대표는 그러나 "2010년에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건 단순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동안 중외가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준비한 카드들의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까지 고려한 구체적인 목표"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로 중외제약은 지난해 전년 대비 10.1%가량 증가한 3427억원의 매출을 달성,4년 만에 두자릿수 증가율을 회복했다.

올해는 20%대 매출 증가율 달성을 예상하고 있다.

1조원대 매출 달성을 위한 질주에 시동이 걸린 셈이다.

◆2010년 매출 1조원대 도약 시동 걸었다

중외제약의 재기를 이끌고 있는 것은 국내 판권을 확보한 고지혈증 치료제 '리바로'와 당뇨병 치료제 '글루패스트' 등과 같은 성장성 높은 오리지널 신약군이다.

리바로는 지난해 110억원의 매출을 기록,시판 2년 만에 '블록버스터' 의약품에 이름을 올렸다.

고지혈증 치료제로 세계 최대 매출을 자랑하는 화이자의 '리피토'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말 시판한 글루패스트의 경우 국내 당뇨병 치료제 시장 규모가 연 20% 이상씩 커지고 있어 2년 내에 매출 1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4년 중외제약이 세계 최초로 제네릭(복제약) 개발에 성공한 차세대 항생제 이미페넴도 중외제약의 성장 동력 중 하나다.

이미페넴은 MSD가 생산하고 있는 차세대 항생제로 1995년 특허가 만료됐지만 까다로운 물리적 특성과 고난도의 합성 기술 때문에 제네릭 개발이 어려웠다.

그러나 중외제약이 2004년 세계 최초로 제네릭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약 7200억원에 달하는 이미페넴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채비를 갖췄다.

이미 브라질 일본 중국 시장에 진출했으며 세계 2위 제네릭 전문 제약사인 산도즈와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해 미국 및 유럽 시장 진출도 확정 지었다.

이 밖에 총 1500억원을 투자해 충남 당진에 건설한 세계 최대 규모의 수액 공장이 작년 9월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감에 따라 국내 시장 지배력 강화 및 해외수출 증대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

이 대표는 "리바로와 글루패스트를 국내 판권을 완전히 사들이는 방식으로 도입한 것이나 이미페넴 제네릭 개발에 성공한 것 모두 MSD와의 결별로 인한 시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 제약업계에 불어닥치고 있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각종 정책 리스크로부터 한 걸음 비켜나 있다는 점도 중외제약의 강점으로 꼽힌다.

전체 매출에서 수액과 같은 필수 의약품과 특허 만기가 아직 많이 남은 오리지널 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보험 약가 인하로 인한 타격을 덜 받는 까닭.

아울러 이미페넴의 경우 향후 해외 수출 비중이 갈수록 확대될 예정이어서 국내 정책 변화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평가다.

황상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전체 제품 구성과 향후 예상되는 해외 수출 비중 확대 등을 감안할 때 중외제약은 다른 제약회사에 비해 탄탄한 수익 구조를 갖췄다"고 분석했다.

글=김동윤·사진=양윤모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