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회장은 대법원의 판결 가운데 분식회계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피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사기대출과 해외재산도피 만큼은 무죄 판결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오랜 친구이자 법률대리인이었던 석진강 변호사는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김 회장은 대법원 판결에 상당히 큰 기대를 걸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김 회장이 무척 낙담한 것으로 전했다. 김 회장이 걸었던 최소한의 기대가 무너지자 더 이상 귀국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석 변호사는 김 회장이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유·불리에 관계 없이 귀국한다는 결심을 세워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랫사람들이 연루된 재판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귀국할 경우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측근들이 전할 정도로 악화된 건강상태도 김 회장이 귀국을 결심한 중요한 배경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도피 이전 이미 뇌수술과 위암수술을 받았던 김 회장은 해외 도피 중 장협착증과 동맥경화 협심증 등으로 고생을 했다는 것. 김 회장이 최근 몇몇 경제계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귀국 문제를 상의하면서 "이젠 늙고 건강도 좋지 않아 더 이상 해외로 떠돌아다니기 싫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점으로 미뤄볼 때 5년8개월을 해외로 떠돌아다니며 극도로 건강이 악화된 김 회장이 귀국해 모든 것을 털어 놓음으로써 심적부담을 덜자는 인간적인 고뇌도 귀국을 결심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한 측근은 "나이 70이 다된 분에게 무슨 미련이 많이 남아 있겠냐"면서 "고국에서 가족들 얼굴이라도 보면서 지내고픈 심경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귀국엔 이같은 내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대우와 자신의 과는 물론 공도 함께 평가하려는 국내 여론 동향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우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대우인회'와 서울대 386운동권 대우 출신들로 이뤄진 '세계경영포럼' 등이 적극적인 활동에 들어간 점은 큰 힘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회장으로서는 귀국에 따른 상당한 파장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옛 대우그룹이 해체 직전 전방위 로비에 나섰던 점에 미뤄 김 회장의 검찰 진술에 따라서는 후폭풍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측근인 백기승 유진그룹 전무는 이와 관련,"법률대리인을 통해 귀국한 뒤 병원에서 수사를 받는 방안도 협의했으나 김 회장께서는 '수사를 받다가 쓰러지더라도 특별한 대우를 받을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다"고 밝혀 김 회장이 당당히 조사에 임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이 귀국 전 윤동민 변호사 등 김&장 변호인단을 통해 검찰과 어느 정도 향후 수사 일정에 대한 조율을 마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