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교의 宋梓 회장은 이름 읽기가 쉽지 않다. 한자에 어지간히 밝은 사람조차 '梓'자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선생은 '자'를 끝까지 '재'라고 읽었다고 한다. 저명인사가 된 지금도 한자 이름을 내놓으면 '송재'로 읽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가 걸어온 길 역시 그의 한자 이름 읽기처럼 독특한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3월 대교 회장 겸 대표이사로의 변신이다. 당시 주변에선 연세대 명지대 총장과 교육부 장관을 지낸 교육자가 사교육 기업에 들어간 것을 두고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명망있는 교육자가 기업가로 나서는 경우를 좀체 보기 힘든 풍토에서 그의 '변신'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고민 많이 했습니다. 때마침 다른 대학에서 총장 제의가 있었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대학도 좋지만 큰 교육기업에서 교육에 공헌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변신을 이상하게 보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송 회장은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며 "잘한 선택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같은 언급에서 인간 송자의 개방적 사고와 경영철학을 읽을 수 있다. "대학도 좋지만…"이라는 대목에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직업관을 엿볼 수 있다. 다양화 시대에 어느 것 하나(제도권 교육)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유연한 시각이리라.엄연히 존재하는 사교육 현장을 인정하고 그곳에서 이바지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봤다는 얘기다. "공교육이 붕괴현상을 보이고 사교육이 비대해져 가는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적 수요가 있는 사교육 시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사교육이 공교육의 역할을 일부나마 대신할 수 있고 또 필요할 경우 그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교육을 조화롭게 운영하면 위기에 처한 공교육을 도울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의 이런 설명에서 혹자는 송자 전 교육부 장관이 공교육을 떠난지 1년도 안 돼 교육기업가로서의 관(觀)을 정립했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가 연세대 총장 시절에 보인 '기업가적 총장상'을 떠올린다면 그의 가치관과 이력은 수미일관함을 알 수 있다. 그는 92년부터 96년까지 제12대 연세대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이미 'CEO 총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다. 'CEO 총장'은 변화에 둔하고 경영개념과 담쌓고 지냈던 대학에 '기업 마인드'라는 새 바람을 불어 넣었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그의 자유주의적 경제논리는 긴 잠에 빠져 있던 교육계를 흔들어 깨우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이 때 그는 기존의 고리타분한 총장상을 깨는 기업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당시를 '불꽃처럼 산 4년'이라고 회상한다. "임기 내내 밤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하루종일 일에 파묻히다시피 했습니다. 늦은 저녁 때라도 의논할 일이나 아이디어가 생기면 실.처장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거는 횡포를 부렸지요. 하지만 주변에서 취지를 이해해준 데다 국내외 동문 등이 물심양면으로 잘 도와줘 힘든 줄 모르고 일했습니다" 송 회장은 그 때 기존 총장의 스타일과 달리 동문을 찾아 다니면서 대학발전기금 1천5백억원을 모았다. '세일즈 총장' 소리를 들은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가만히 앉아서 학생을 받아들이는 대학상에서 벗어나 학생을 고객 이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경영개념을 도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97년 명지대 총장으로 옮긴 뒤에도 송 회장은 1천6백억원 이상의 발전기금을 조성하는 능력을 보였다. 이를 두고 "지나치게 장사꾼 같다"거나 "총장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일부 비난이 일기도 했다. 한마디로 너무 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때 그렇게 욕을 먹었지만 제가 나선 이후로 대학 총장들이 1백80도 달라졌잖아요. 자리만 지키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안거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저는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 송 회장은 지금도 '총장은 앉아 있어서는 안된다'는 세일즈 총장론을 견지하고 있다. 그의 이같은 공격적인 자세는 대교에서도 그대로 투영됐다. '세일즈총장'과 회계학 전공자답게 그는 기업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그는 지난 3월 대교와 인연을 맺자마자 대교(大敎)의 의미를 색다르게 해석했다. 대교는 사기업 대교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교육'의 줄임말이라고 정의했다. 임직원들에게 기업으로서 대교가 가져야 할 목표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시켰다. 그는 "대교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은 대한민국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역사적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강조, 임직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송 회장은 그 이후 매출 6천5백억원의 대교를 세계 1위 교육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대교 알기에 들어갔다. 지난 4월 다국적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사에 기업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했다. 97년 처음으로 매출규모가 5천억원을 돌파한 이후 매년 급성장을 거듭해온 대교의 뒤를 돌아보고 미래상을 예측해 보기 위해서였다. 매출과 당기순이익이 급증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통상적으로는 현실에 안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송 회장은 이 때야말로 변화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송 회장은 맥킨지보고서를 토대로 지난 10월 대교의 원대한 경영계획을 발표했다. 2009년까지 신규 사업매출액 1조9천7백억원 등 총 4조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임직원에게 정확한 목표점을 제시하고 결의를 다질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조직 전체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인재육성, 성과관리, 마케팅 강화, 고객만족도 제고, 조직 재설계 등 5개 분야 전담팀을 구성했다. 송 회장은 이같은 목표를 전국의 지점장 이상 임직원 7백명에게 제시하며 자율적 참여를 촉구했다. 그는 항상 자율적 참여 없이는 어떠한 목표도 이룰 수 없다는 '자율 신봉자'다. 송 회장은 최근 (주)nSF(구 삼성출판사)의 전집출판 부문의 제품과 판매조직을 인수, 대교아인슈타인이라는 브랜드를 내놓는 등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대교가 상대적으로 약한 출판부문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밖에도 그는 업체간 전략적 제휴와 유아사업 확대, 해외사업 진출 등을 적극 실행해 나갈 계획이다. "대교는 국내 최고의 학습지 브랜드인 '눈높이교육'에 안주하지 않고 종합교육기업으로 커 나갈 것"이라고 송 회장은 자신감을 보였다. 새로운 총장상을 제시한 송 회장이 내년 말 기업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는 대교의 주가를 얼마나 끌어올려 놓을지 주목된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 ----------------------------------------------------------------- [ 약력 ] 1936년 충남 출생 대전고.연세대 상학과 졸업 62년 미국 워싱턴대학 경영학 석사 67년 워싱턴대학 경영학 박사 67~76년 코네티컷대학 경영대학원 교수 76~96년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79~80년 연세대 재무처장 80~84년 연세대 상경대학장 82~83년 한국경영학 회장 84~88년 연세대 기획실장 87~88년 한국회계학 회장 92~96년 연세대 총장 96~현재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97~2000년 명지대 총장 2000~현재 학교법인 명지학원 재단이사 2001~현재 (주)대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