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3년생의 실력은 세계수준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노벨상을 탄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을까. 대학교육이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한완상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훨씬 전에 쓴 책에서 한 말이다. 대학 자율화는 꽤 오래된 주장이지만 아직도 교육에 대한 정부의 시시콜콜한 간섭은 여전하다. 규제는 역사와 문화의 산물로 그 나름대로 존재 이유를 지니고 있다. 대학 정원규제만 해도 그렇다. 6·25때 백낙준 당시 문교부장관이 배울때 배워야 한다며 대학생들에게 징집보류 혜택을 주면서 불붙기 시작한 대학진학붐,그리고 이에 편승한 변태적인 사학(私學)운영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너나없이 대학엔 가야한다는 풍조가 생겼고 대학은 마구잡이로 청강생까지 늘린 탓에 입학정원 학력고사 수능고사 학사고시 졸업정원 등의 제도가 도입되기에 이른 것이다. 상아탑이란 말 대신에 '우골탑'이라는 표현이 통용되기도 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대학정원규제는 대학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학은 본질적으로 자율적인 존재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무엇을 누구에게 가르칠 것인지도 대학 스스로 정해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자율과 경쟁이 가능한 풍토라면 대학마다 좋은 교수, 좋은 시설을 갖추고 좋은 학생을 뽑기 위한 경쟁을 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 교육부는 '중장기 국가인적자원개발 기본계획'을 짜고 있다고 한다. 이르면 2005년부터 시설과 교수를 갖추면 대학이 정원을 알아서 정할 수 있다는게 주내용이다. 대학의 자율을 허용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 또한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나간 오랜 세월의 경험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은 대학 스스로에 달렸다고 본다. 대학관계자들에겐 불쾌하게 들리겠지만 오랜 타율에 길들여진 대학들이 과연 제대로 자율을 행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따지고 보면 주어진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쉬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양정진 논설위원 yang2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