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나라형태가 채 여물기전인 19세기초 3대대통령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매우 난처한 문제로 고민을 했어야만 했다. 나폴레옹
프랑스황제가 느닷없이 루이지애나의 광대한 지역을 미국에 팔겠다고
제의해왔기 때문이다.

제퍼슨은 당초 미시시피강의 하구에 있는 교통의 요충지 뉴올리언스의
매입을 비밀리에 프랑스와 교섭하고 있었다. 그의 측근인 먼로(5대
대통령)까지 파리에 파견,항구매입을 위한 땅거래를 하던중 나폴레옹이
난데없이 당시의 "미합중국" 영토보다 배나 더 큰 미대륙의 중부지역을
통째로 매입할 의사가 없느냐고 제의해왔다.

먼로를 단장으로한 미국측 대표단은 1803년4월30일 "약간의 가격교섭"끝에
선뜻 매입계약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매입가격은 1,500만달러.
루이지애나지역에 거주하는 전 주민(주로 프랑스 스페인인)에게 미국의
시민권을 부여하고 그들의 종교(가톨릭)를 허용한다는 단서만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의회에서 문제가 생겼다. 뉴잉글랜드의 연방주의자들이
이거래에 대해 반기를 들고나왔다. 새로운 영토확장에 관한 헌법의
명시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이거래는 위헌이란 장벽에 걸리고관말았다.
뿐만아니라 의회의 거물이유 "쓸모없는 땅덩이를 구입함으로써 국민의
세금부담만 무겁게 하려한다"고 맹렬히 반대하고 나섰다.

제퍼슨은 몇몇 공화당소속의원들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은 외국과 조약을
맺을수 있다"는 군한을 원용,위헌시비를 해결하지목한채 따덩이의
매입계약을 매듭지었다.

루이지애나 매입(The Louisiana Purchase)이란 산고를 겪고 미국에 편입된
땅은 멕시코만에서 캐나다의 국경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

이번의 미국대통령선거에서 압승한 클린턴지사를 키운 아칸소도 이때의
무더기거래에 "묻어온"지역. 노예해방을 실천한 링컨대통령의 고향
켄터키주도 이때 미국으로 편입된 곳이다.

"아칸소"란 아메리칸 인디언의 언어로 "아랫강 사람들"이란 뜻. 1936년에
미연방의 25번째주로 편입되긴 했으나 미국에서 잘못 사는 순으로 두번째.
주의 전체인구는 230만 안팎의 소규모 내륙주이기도 하다. 제퍼슨대통령
당시의 구입 가격으로 치면 10억원안팎이나 될까 말까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