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사장
67년의 세계일주 때는 유라시아대륙 한가운데를 차지한 공산권을
우회,적도부근으로만 주항로가 잡혀져 무척 답답했었다. 이제는
무소불통으로 동구건 시베이아건 주야불문 태극기항로가 기내스크린에
이어진다. 흡연승객이 하대를 받게된것쯤은 놀랄 일도 못된다.

25년만의 일주에서 본 실감난 변화중의 하나는 동서반구 어딜가나
한국인과 마주치고 한국식당에서 우리 음식을 먹을수 있다는 기쁨일
것이다. 그래도 나을거라고 중국집에 들어갔다가 자장면은커녕 기름투성이
음식을 삼키고 느끼해하던 그때가 차라리 그립기까지 하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다. 뒤바뀐 한국인의 표피적 위상과 표피에
따라가지 못하는 내면적 위상간의 괴리에 문제가 있다. 코리안하면
"한국전쟁""눈많은 추운나라""미국의 식민지"라던 단선적 반응이 "잘사는
나라""올림픽 개최국""자동차 수출국"등으로 다양해진 것은 확실히
천지개벽이다.

그러나 그같은 치켜세움의 포만감이 이내 무안으로 바뀌는 것은 웬일인가.
선례라 하여 1등표로 타국적기를 타니 등뒤로 따가운 시선이 와닿는다.
자격지심의 과민성 반응만은 아니다. 막상 말문을 열면 깍듯이 예를 갖춰
"일본서 왔느냐" 서부터 고분고분 이야기가 풀리지만,잠시 눈을 돌리면
시선은 이내 차진다.

LA발 뉴욕행 미국기에서 피곤하여 잠시 눈을 반쯤 감은 사이에
식사서비스를 하던 스튜어디스는 그냥 지나쳤다. 눈을 떠도 돌아와 "뭘
들겠느냐" 단한마디 아랑곳하질 않았다. 1등이 아니라 "이코노미"도 그런
법은 아닌데 말이다. 맘대로 시나리오를 쓴다면 "너희가 돈좀 생겼다고
1등객 행세냐"는 심사가 아닐는지. 한.흑마찰 직후의 지레짐작이라고
하기에는 여타의 경우에서도 그전과 다른 많은 이질감을 주체할수 없었다.

그러면 어쩔것인가. 고까움만 곱씹을순 없지 않은가. LA교민들의 봉변을
놓고 원인분석도 갖가지로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이런 기회에 국경없는
지구촌사람으로서 자신의 반성할바를 곰곰 찾아내 거리낌 없이 고쳐야한다.

가령 조금 성공했다고 오만하진 않은가. 현지의 시민.주민으로서의
의무와 사회양속은 잘 지키는가. 혹시 백인이 황인을 얕보는 이상으로
황인인 우리가 흑인이라면 무조건 멸시하지는 않는가. 안에서 새던
겉치레의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는건 아닌가 등등. 아무래도 그에 대한
자답은 어느쪽이냐하면 부정쪽이다.

과거 공산 종주국과 그 속국이던 헝가리의 이번 여행에서 두개의 각기
다른 거울을 마주했다. 그 가운데 우리자신의 거울을 끼워 넣는다면
스스로를 비추는 삼면경이 됨직도 하다.

한쪽 거울 모스크바에는 풍부한 자원의 혜택 속에서도 오직 국민
자율역사의 결여 하나로 길위에서 방황하는 초대거인의 비둔한 몸짓이 비쳐
나온다. 다른 한쪽 부다페스트에는 잘 균형잡힌 알맞은 몸매의 장년이
잠시의 악몽에서 정신차려 성실하던 옛모습을 가다듬는 진지함이 투사된다.

모스크바대학 졸업후 평생의 교사생활에서 은퇴,동액의 달러와 맞먹는
6백루블의 안락한 연금생활을 하던 고려인 노부인이 이젠 단
5달러(1달러=1백20루블)로 월수가 줄어든 비감속에 한국인 숙소의 파출부로
빵을 보태는 모습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리게 했다. 새로 허용된 곳곳의
행상군집속에 단한벌의 스웨터,아니 단한통의 맥주캔을 두손에 받쳐들고
고객을 기다리는,"부활"에 나옴직한 귀부인풍 아낙네들의 무표정을 대할땐
오히려 이쪽이 안쓰러웠다. 혹시 U턴은 없겠느냐는 걱정어린 질문에
노보스티의 젊은 기자는 자신있게 "노"했다. 그 이유중에 신빙이 가는건
고기맛본 중이 파리 안남긴다고 "전공산당 간부들이 돈맛을 톡톡히 보고
있기 때문에 좌회전은 안하며 오히려 거기에따른 새로운 부패(신악)가
문제"라는 대목이었다.

헝가리는 다르다. 40년 소련지배의 공백을 메우는데 불과 3년만에 괄목할
진전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에서 넘어간뒤의 1천1백여년의 자랑스런
마자르역사가 축적돼 있는 "동구의 파리" 부다페스트와 그 젖줄 다뉴브강의
풍요는 교외산록에 무수히 점재하는 전공산간부들의 별장이 갖는 의미와
야릇이 대조를 이룬다. 그 회한의 통사를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는
도도하여 비록 독일에 기대서라도 온갖 장애를 극복해 가며 10년내
최선진권 진입을 벼르고 있었다.

지구라는 무대에서도 배우들의 역할은 바뀐다. 과연 한국인,동양인의
새배역은 무엇인가. 만일 무한증악의 대상인 일인의 성공마저 없었던들
오늘날 백인들이 유색인에게 경계의 시선이나마 던지겠나 까지를 우리 함께
생각하면서 소성에 자만치 말고 분수에 맞는 한반도와 아시아를 꾸려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뜻에서 이번 부다페스트의 IPI총회에서 한국의 언론자유회복 보고가
시비없이 채택된 것도 작지만 하나의 진전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