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바람은 먼저 정당쪽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 지구당개편 혹은
창설대회 이름으로 서서히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 뒤에 선거일이
공고되고 후보등록이 개시되고 부터는 여기에 후보들이 가세하고 선거전의
주역으로 전면에 나섰다.
여기까지는 과거와 크게 다를바 없다. 13대에도 그런 수순이었고 그
이전에도 대개 그랬다. 이번에 다른 것은 유권자쪽이다. 정당과 후보들이
목청을 돋우고 선거열기가 차츰 익어가는데도 유권자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조용하다. 열기는 커녕 차가울 정도이다.
주말유세를 계기로 조금은 달라지는 빛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후보등록마감이후 첫 주말인 그저께와 어제 이틀동안
전국에서는 도합 3백48회의 합동연설회가 있었다. 이로써 법에 허용된
연설회의 절반가까이를 마쳤다. 선거전은 이제 중반에 돌입했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의 표정과 관심에 기본적으로 큰 변화가 없어 보이는
현실은 예삿일이 아니다. 각당후보와 무소속후보들은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서 남은 선거운동기간중 어떤 자세와 전략으로 임해야 할것인지를
정리하고 다듬을 필요가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투표일까지 1주일남짓
있지만 남은 연설회는 역시 마지막 주말 이틀사이에 집중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선거전양상은 그런대로 큰 문제가 없는 편이다. 많은
탈법.불법운동사례가 고발되고 비리를 지탄하는 소리가 있으나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또 정당연설회와 후보합동연설회에서 간혹 원색적인
비방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작태가 더러 연출되기도 하나 대체로는
차분한 분위기다.
그러나 거의 모든 후보들이 한결같이 맹목적인 지지만을 호소할뿐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그 무엇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알맹이
없는 공허한 유세전이 계속되고 있다.
본난이 누차 강조한바 있거니와 이번 총선은 정책대결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한다. 민주대 반민주의 논쟁대신 국가가 당면한 많은 문제의 해결과
장차 걸어가야 할 방향에 관한 실현성있고 설득력있는 정책대결에 초점을
모아야한다.
그런데도 아직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무작정 상대를 비난하거나
지난날의 업적을 내세우기만 할뿐 건전한 비판과 정책대안의 제시가 없다.
온갖 황당무계한 선심성 공약이 아무런 여과없이 마구 양산되고 있다.
유권자들이 아직 총선에 무관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표를 줄만한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역대 어느 총선보다
많은 부동표의 존재도 바로 그런 현실에 연유한다.
후보들은 무엇보다 먼저 국회의원의 참뜻과 국회의 기능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고는 당선돼서도 안되고 당선될수도 없음을 깨달아야한다.
비록 인구비율로 쪼갠 지역구에서 선출되긴 하지만 국회의원은 결코
지역대표나 지방대표가 아니다. 따라서 특정지역 주민이익의 대변이나
지역개발이 그의 책무는 아니다. 그건 지자제의 몫이고 국회의원은
국민전체를 대변해서 국정에 참여해야한다. 즉 입법을 하고 예산을
심의하고 정부를 감시견제하는게 국회와 그 구성원인 국회의원의 책무이다.
우리는 지금 국가적으로 몹시 어렵고 중요한 시기에 있다. 어려운
문제,해야할 일이 산적해 있다.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민생과 사회 교육
문화등 풀어야할 문제가 없는 곳이 없고 동시에 너무나 많다.
국회의원선거에서 후보들은 이런 문제들을 풀어갈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추출해서 답안지를 써내고 유권자들로 하여금
채점을 하게 하는 시험과정이 선거다. 답안 내용이 곧 정책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펴고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가를 약속해야 한다.
답안내용의 옳고 그름은 어디까지나 채점자인 유권자가 판단할 일이다.
그것이 정답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사전에 충분히 검토 정리되어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내용이라는 확신을 줄수 있어야한다. 유권자가 현명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유권자는 공약과 공약을 구분하고 공정한 채점을
할수 있어야 한다. 공명선거도 바로 그런 토양에서 뿌리내릴수 있다.
역시 일차적으로는 정당과 후보들이 시종 건전하고 진지한 자세로
선거전을 진행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당선되고
보려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비록 한두개일망정 의미있는 정책을 제시해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설령 낙선되더라도 자신의 정책이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다면 그것대로 보람있는 일이다. 또 좋은 정책은
언제건 어떤 경로건 받아들여진다.
시간이 결코 많지않다. 지금까지 각당이 산발적이고 즉흥적이며
일관성없게 내놓은 각종정책을 유권자가 판단하기 쉽게 정리해서 제시해야
한다. 가령 경제정책만해도 토지공개념,금융실명제,주택,농촌문제등
굵직한 문제들이 거론만 되었을뿐 구체적이고 깊이있는 논의는 되지
않고있다. 각당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수없고,각종 공약이
혼란하여,유권자도 혼란한 선택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무슨 정당정치인가.
정정당당히 선명한 정책대결을 하는것이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