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27)] 거년형남매사설(去年荊南梅似雪) 금년계북설여매
당나라 장열(張說·667~730)의 ‘유주신세작(幽州新歲作: 유주에서 새해를 맞으며 짓다)’이다. 작가는 뤄양(洛陽) 출신으로 측천무후 당시 실시된 과거에서 장원급제했고 정쟁에 휘말려 유배와 복직을 경험했다. 뒷날 승상의 자리에 올라 당나라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이후 허베이(河北)성 안찰사를 지냈다. 이 글이 수록된 《당시선(唐詩選)》은 명나라 이반룡(李攀龍)이 전 7권으로 편집한 것이다.

본문 속의 징난(荊南)은 후베이(湖北)성 징저우(荊州)이며 지베이는 허베이성 요저우(幽州)다. 남북으로 멀리 떨어진 관계로 기온차가 현격했다. 지금 머무는 북방 군사기지인 톈진(天津)은 예전에 살았던 퉁팅후(洞庭湖) 인근보다 훨씬 더 추운 곳이다. 추위 때문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한데 매화는 고사하고 또 춘설이 내린 것이다. 쩝. 하지만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작년 봄의 매화와 올봄의 눈을 각각 만났지만 이를 동일 공간에서 중첩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매화 속에서 눈을 생각하고, 눈 속에서 매화를 읽어 낸 것이다. 결국 눈과 매화는 둘이 아니었다.

고려의 태고보우(太古普愚·1301~1382)국사도 ‘설매불이(雪梅不二)’ 경지를 보여주었다. 앞의 두 줄은 다섯 글자, 뒤의 두 줄은 여섯 글자를 이용해 시 한 편을 완성한 파격적 형식을 구사했다. 그리고 눈 내리는 풍광을 ‘편(片)’이라는 글자의 여섯 번 반복을 통해 그려냈다.

‘섣달 눈이 허공에 가득 내리는데(臘雪滿空來)/추위에도 매화꽃이 활짝 피었네(寒梅花正開)/흰 눈송이 조각조각 흩어져 날리니(片片片片片片)/눈인지 매화인지 분간하기 어렵네(散梅花眞不辨)’

매화의 가장 큰 매력은 겨울과 봄을 동시에 안고 있는 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꽃이 눈과 함께 어우러질 때 최고로 친다. 눈 속에서 피기도 하지만 이미 피어 있는 꽃 위로 눈이 내리기도 한다. 꽃도 봄을 잠시 잊고 눈도 겨울을 잠시 망각하는 그 순간 비로소 최고의 설중매(雪中梅)는 탄생한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