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은둔 원인의 30%는 취업실패...눈물 닦아주고파"

[은둔 청년에게 내미는 커피 한 잔, ‘카페곰손’ 방문기]

손호재 대표 "상처받은 사람 직원 채용…다시 일어설 디디돌 되고파"
취업실패한 은둔 청년에게 따뜻한 커피를 대접하고 있는 '카페곰손'의 손호재 대표
출입구 없이 구멍 하나 뚫려 있는 카페, 가까이 다가가자 복슬복슬한 ‘곰손’이 불쑥 튀어나와 악수를 청한다. 주문이 끝난 후엔 따뜻한 커피와 장미꽃 한 송이도 준다. 낯선 상황이지만 손님들은 화답하듯 곰손에게 말을 건넨다. “고마워, 사랑해!”

“밖에 나오는 것부터 용기였어요. 처음에는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사랑한다’는 말이 익숙해요.” 벽 뒤에는 다름아닌 곰손 장갑을 낀 사람이 있다. 장갑을 낀 손의 주인공은 남들보다 사회로의 한 걸음이 망설여졌을 은둔 청년들이다.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마음의 상처, 취업 실패 등 갖가지 이유로 동굴 속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들. 그들이 동굴 밖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한민국 최초 비대면 유인 카페 ‘카페곰손’이다.서울시가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실시한 전국 최초 '고립·은둔 청년 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시 청년 100명 중 4~5명은 은둔형 외톨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최대 12만 9000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확대하면 은둔 청년은 약 61만명에 달한다.
서울시는 6개월을 기준으로 정서적·물리적 고립상태가 지속되거나, 외출이 거의 없이 집에서만 생활하며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경우를 ‘은둔’으로 규정했다. 독거노인으로 대표되는 노인세대의 사회적 고립도 못지 않게 청년들의 사회적 고립 문제도 심각하다.

고립·은둔의 가장 큰 원인은 실직과 취업의 어려움이다. 2021년 9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은둔 생활 요인의 27.8%는 ‘취업 실패’로 나타났다. 반복된 취업 실패가 대인기피로 이어지고 취업 공백은 또 다른 편견을 낳아 취업의 장애물이 되는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카페곰손의 시작은 저에 대한 반성이었어요”
곰손카페는 중국과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중국은 청각장애인, 일본은 히키코모리(대인기피증) 직원들이 얼굴을 내보이지 않고 곰손으로만 손님과 소통한다. 카페곰손 손호재 대표는 “대한민국에는 소외 계층 아닌 소외 계층 사람들이 다방면에서 많이 존재한다.”며 “한국 사회가 정한 기준에 들지 못하거나, 상처받은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직원을 채용함에 따라 현재는 취업 실패로 은둔 청년인 된 A 씨, 외모 지상 주의로 상처를 받은 B 씨, 은둔 생활을 극복하기 위해 찾아온 C 씨가 카페곰손을 거쳐가고 있다. 카페곰손은 세상이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춰오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일어설 수 있는 지지대가 돼주고 있었다.손 대표 역시 처음에는 직원을 외모로 판단했다. 프렌차이즈 카페 창업 시절, 그는 ‘예쁘고 잘생긴’ 알바생을 선호했다. 그러다 과거 외모로 인해 따돌림을 받았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누군가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그때의 원동력이 현재 ‘카페곰손’을 이뤘다. “은둔 생활이 익숙했던 친구는 나오는 것 자체가 용기라고 생각했어요. 사소한 일상이나 취미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유대감을 쌓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다양한 시도로 직원들에게 다가갔던 본인의 노력을 설명하는 모습에서 카페곰손이 전하는 사랑과 관심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알 수 있었다.

◆카페곰손의 1등 요인은 손님의 따뜻한 인사
직원들이 사랑을 느끼고 변화하기까지는 손님들의 도움도 컸다. 특히 낯선 곰손이 청하는 악수를 따스히 받아주고 ‘사랑해’, ‘고마워’ 말해주는 손님들의 반응은 직원에게 자신감을 부여했다. 손 대표는 “음료가 나올 때 사랑한다는 말만 건네는 것이 아니라, 곰손을 통해 선물과 편지를 건네주는 손님들도 많아요. 옆에서 봤을 때도 되게 행복해하세요. 다들 각자의 상황과 방식대로 사랑을 받아들이고 힘을 얻고 있어요.” 라며 따뜻한 시선의 영향력을 전했다.

실제로 말이 없고 집 밖을 떠나지 않았던 A 씨와 C 씨는 현재 간단한 회식 자리에 참석할 수 있을 정도로 은둔 생활에서 많이 벗어났다. 외모에 대해 자신감이 없던 B 씨는 자신의 개성에 대해 찾아보기도 했다. 손 대표는 “가끔 B 씨가 패션에 관해서 조언을 구할 때가 있어요. 본인의 개성을 찾고 있어요. 외모만 생각했던 그 친구의 기준이 바뀐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카페곰손에서 받은 따뜻한 사랑들이 그들을 세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이다.◆여전히 부족한 ‘은둔 청년’을 향한 지원
그러나 카페곰손 같은 관심과 손길이 사회 전역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023년도 보건복지부는 전국 은둔 청년 실태 조사 계획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차원에서 그들을 위한 지원 정책을 없다. 은둔 청년을 보듬어 줄 연고는 부족한 것이 현 실정이다.

손호재 사장은 “곰손 카페는 앞으로 펼쳐질 많은 변화들의 한 사례일 뿐, 더 확고한 기준과 지원으로 소외된 존재를 포용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는 “모두 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잖아요. 누군가가 정한 기준에 벗어나 모두가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사랑한다고 옆에 있는 사람한테 말해보면 좋겠어요. 누구라도,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이 기사를 봤다면, 사랑해라고 이야기해보세요. 그럼 어떤 변화들이 생기는지는 본인들이 가장 잘 알겠죠.”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전했던 말이다. 동시에 그가 곰손 카페를 통해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그는 “더 많은 친구를 돕고 싶지만 저 혼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국에 카페곰손 같은 공간이 생겨서 사회 취약자들이 설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잡아라 기자단 5기 김지은·박소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