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승범 교수, 학술지서 주장…"박지원은 선비다운 선비 요구"
"'양반전'에 신분제 비판 없어…당시 양반제 공고했다"
조선 후기 문인 박지원(1737∼1805)이 쓴 소설 '양반전'은 신분제 철폐를 요구한 작품이 아니며, 당시 양반제가 동요하거나 붕괴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조선시대사 연구자인 계승범 서강대 교수는 한국한문학회가 펴내는 학술지 '한국한문학연구' 최신호에서 "양반전은 고리타분하고 무능한 양반과 탐학하기 이를 데 없는 세도 양반을 풍자했지만, 신분제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며 18세기에 신분제가 흔들렸다는 인식으로 인해 과도하게 해석된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문집 '연암집'(燕巖集)에 실린 양반전은 강원도 정선에 사는 매우 가난한 양반이 고을의 평민 부자에게 양반 신분을 팔려 했으나, 군수가 매매 문서에 양반 행동 지침을 열거하자 그에 놀란 부자가 양반 되기를 포기했다는 내용이다.

양반전은 과거에 신분제 해체나 동요 현상을 보여주는 혁신적 소설로 평가됐으나, 지금은 박지원이 양반제를 긍정했고 그저 양반을 풍자했을 뿐이라고 해석하는 시각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양반전을 신분제와 연결하는 견해가 강하게 존재한다.

계 교수는 우선 양반전이 어디까지나 현실과 동떨어진 소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양반전에서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양반을 찾아갔다는 부분에 대해 "18세기 중엽은 당쟁이 극심했는데, 여러 당색(黨色)의 군수가 몸소 찾아갔다면 그는 '전국구' 차원의 대학자였을 것"이라며 "박지원이 제시한 정선 양반의 됨됨이와 생활고는 풍자를 위한 인위적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양반과 상민이 신분을 서로 맞바꾸는 일을 일개 군수가 앞장서서 주관한다는 설정도 박지원이 만든 허구"라며 꽤 부유한 상민이나 천민은 18세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조선시대 초기부터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계 교수는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양반전을 신분제와 연계해 생각한 이유로 조선 후기에 눈에 띄게 농업과 상공업이 발달했다는 자본주의 맹아론, 경제력을 갖춰 양반 신분을 사는 납속(納粟) 제도를 지목했다.

그는 "내재적 발전론의 핵심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자본주의 맹아론은 이미 실증적 차원에서는 학설로서 생명을 다했다"며 "예나 지금이나 경제구조가 바뀌고 새 기술이 등장하면 재화를 갖춘 상위 기득권층에 유리하다"고 비판했다.

납속과 관련해서는 "국가에서 납속의 대가로 내준 것은 통덕랑(通德郞), 통정대부(通政大夫) 같은 직품(職品)이지, 양반이라는 신분증명서가 아니었다"며 "직품을 받았다고 해서 자기 고을에서 바로 양반 신분으로 상승하기는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19세기에 하층민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빈한한 양반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것은 양반층 내부에서 하향 분화가 발생한 결과이며, 사회지배층으로서 지배구조 자체는 엄존했다"고 덧붙였다.

계 교수는 "소설은 오히려 18세기 조선의 신분 질서가 공고했음을 보여준다"며 "작가 박지원의 의도도 선비(士)다운 선비를 회복하자는 것이지, 사회 신분으로서의 선비를 타파하자는 점은 찾아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박지원 소설을 재해석하는 움직임은 이전에도 있었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는 2017년 12월 출간한 책에서 박지원이 '허생전'에서 바란 세상은 기존에 알려진 근대적 상업국가가 아닌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소농 공동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