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미술관 '내가 사는 피드' 展...8월 23일까지
2010년대 이후 등장한 예술현상...SNS가 미술에 끼친 영향 조명
김도균 김진현 노상호 등 17인 회화·설치·영상 등 60여 점 선봬
서울 아르코미술관의 ‘내가 사는 피드’전에 전시된 김진현의 사진 작품 ‘Muhlenbergia capillaris’. 아르코미술관 제공

서울 아르코미술관의 ‘내가 사는 피드’전에 전시된 김진현의 사진 작품 ‘Muhlenbergia capillaris’. 아르코미술관 제공

노상호 작가(34)는 매일 인터넷이나 SNS의 저화질 이미지를 수집해 A4 종이에 먹지를 대고 베낀다. 이 과정에서 작은 요소를 추가하거나 또 다른 이미지를 몽타주해 SNS에 올린다. 그는 자신이 인풋(input) 자료와 재생산·재배치돼 나가는 아웃풋(output) 생산물 사이에 먹지처럼 존재하는 ‘얇은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넷 가상환경과 현실의 쏟아지는 이미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노상호, The Great Chapbook II, 캔버스에 수용성 유채, 270×220cm, 2018. 아르코미술관 제공

노상호, The Great Chapbook II, 캔버스에 수용성 유채, 270×220cm, 2018. 아르코미술관 제공

노 작가의 ‘더 그레이트 챕북 Ⅱ(The Great ChapbookⅡ)’는 이처럼 인터넷이나 SNS에서 내려받은 이미지를 회화로 재현해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들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챕북은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했던 싸구려 책. 가볍게 읽힌 뒤 버려지는 챕북처럼 인터넷과 SNS에서 부유하는 이미지들을 별다른 개연성 없이 덕지덕지 이어 붙였다는 얘기다.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Follow, Flow, Feed 내가 사는 피드’전은 유튜브·인스타그램·트위터 등 SNS를 활용한 동시대 예술과 현대인의 일상에 침투한 SNS가 예술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에 주목한 전시다. 고안철 김진현 김효재 노상호 이윤서 홍채연 등 20~50대 작가 17명(팀)이 만든 회화, 영상, 사진, 설치 등 60여 점을 소개하고 있다. 올해 시각예술 창작산실 전시지원 선정작이다.

SNS를 활용한 작품 활동은 2010년 이후 등장한 새로운 현상이다. SNS는 이제 작가들이 정체성을 표현하거나 작품을 알리는 중심 플랫폼이자 작업의 주요 기반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런 특성을 감안해 SNS 이미지의 속성이나 알고리즘을 활용한 작품, SNS 콘텐츠에 깃든 욕망과 이데올로기, 가상의 정체성을 다룬 작품, SNS를 문화적·지리적 차이를 넘어서는 소통의 매개로 삼은 작품 등으로 다양하게 꾸몄다.
고안철, Here and There,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0. 아르코미술관 제공

고안철, Here and There,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0. 아르코미술관 제공

고안철 작가(29)는 고향인 제주도 집 마당의 현무암 중 하나를 우레탄 모형으로 캐스팅해 서울로 가져왔다. 그는 제주도의 원본 현무암과 서울의 모형 현무암을 원격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동시에 보여주는 설치작품 ‘Here there & Everywhere’를 선보였다. 지리적 거리라는 장벽을 SNS로 넘은 사례다. 손윤원 작가(30)와 라나 머도키(25)가 만든 ‘연결풍경’은 서울과 영국 에든버러의 문화적·지리적 거리를 디지털 우정으로 극복하면서 두 사람이 나눈 여러 주제의 대화와 포스트로 구성한 작품이다.

김진현 작가(28)의 사진 작품 ‘Muhlenbergia capillaris’는 SNS 이미지의 속성에 주목한 작품이다. 작가는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던 핑크뮬리 인증샷을 내려받고 다시 올리는 과정을 반복해 이미지가 깨지도록 해 SNS 이미지의 취약성을 드러내 보인다. 보라색 핑크뮬리 이미지는 반복 횟수가 늘수록 검은색으로 깨진 부분이 확대된다. 김 작가는 “어쩌면 핑크뮬리의 진짜 서식처는 SNS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작품 제목은 핑크뮬리의 학명이다.
김효재, SSUL, 6분 42초, 2015-2019. 아르코미술관 제공

김효재, SSUL, 6분 42초, 2015-2019. 아르코미술관 제공

영상·설치작품도 많다. 자신을 유튜브 인플루언서로 연출해 SNS에서의 가상 정체성을 탐구한 김효재 작가(27)의 싱글채널 영상 ‘SSUL’, 인스타그램에서 유통되는 10만 건 이상의 음식 사진을 데이터베이스화한 영상을 추출해 소비사회의 욕망을 다룬 전민제 작가(31)의 ‘#shapeofgreed’, 뷰티 유튜버 콘텐츠를 변주한 방송으로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관에 이의를 제기하는 치명타 작가(32)의 ‘Makeup dash: 드랙킹메이크업’ 등이 눈길을 끈다.
미술작품에 녹아든 SNS…새로운 예술을 빚어내다

인스타그램 라이브의 촬영 및 송출 간의 시간 차이를 이용해 연속적 피드백을 스마트폰 여섯 대로 보여주는 한재석 작가(30)의 ‘Live Feedback 2’, 서울 상공을 떠다니는 최첨단 스튜디오에서 펼치는 버라이어티 토크쇼를 상상한 홍민키 작가(28)의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의 발상도 기발하다. 이윤서 작가(37)는 SNS에서 빠르게 쏟아지고 사라지는 시각 정보의 잔상을 재빨리 기록한 회화 작품을 선보였고, 정아사란 작가(28)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 정보가 인쇄된 즉시 폐기되는 ‘Moment, Moment, Moment’를 통해 SNS의 소모성을 드러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 9일 온라인 개막 퍼포먼스를 먼저 선보였고, 오는 17일 전시 영상을 아르코미술관 SNS 채널에서 공개한다. 전시 관람 일정은 추후 공개할 예정이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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