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갤러리 서울 '벤딩 라이트' 전
'빛의 마술사'들이 만든 빛과 공간의 예술
미국 설치예술 거장 제임스 터렐(77)은 '빛의 마술사'로 불린다.

빛 자체가 표현 수단이자 내용인 터렐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은 사색에 잠긴다.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터렐은 항공기 엔지니어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6세에 파일럿 자격증을 따고 하늘을 직접 경험했다.

작가가 된 그는 로버트 어윈(92), 피터 알렉산더(1939~2020) 등과 함께 1960년대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빛과 공간(Light and Space) 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남부 해변에 내리쬐는 햇살과 아름다운 석양에서 영감을 받아 빛을 바탕으로 공간과 지각을 연구했다.

세 작가의 최근 작품을 모은 전시 '벤딩 라이트(Bending Light)'가 용산구 한남동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개막했다.

1967년부터 오로지 빛만으로 공간을 채우는 작품을 만든 터렐은 경이로운 하늘의 색채를 담은 '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2019)를 선보인다.

갤러리 벽면에 설치된 가로 185.4㎝, 세로 142.2㎝ 크기 작품에서 LED로 만든 여러 층의 빛이 2시간 30분간 변화한다.

푸른색, 분홍색, 보라색 등으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을 표현했다.

내면의 빛을 중시하는 퀘이커교 신자인 터렐에게 빛을 사용하는 것은 깨달음을 주는 것, 초월적인 것을 암시한다.

소리 없이 이어지는 빛과 색의 변화는 몽환적이고 명상적인 세계로 관객을 이끈다.

로버트 어윈은 불이 꺼진 형광등을 세로로 나란히 배치한 'Belmont Shore'를 선보인다.

긴 전구는 갖가지 투명한 색 젤로 덮여 있고, 일부는 연한 회색빛이다.

형광등에는 불이 안 들어오지만, 전구 색과 그림자가 관객의 감각을 흐트러뜨린다.

피터 알렉산더는 기하학적 형태의 플라스틱 조각품으로 빛을 다룬다.

빛을 머금은듯한 다양한 색의 반투명 오브제들이 공간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다.

올해 별세한 알렉산더는 초기에는 서프보드에 광택을 내는 재료인 레진을 틀에 붓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우레탄 조각은 지난해와 올해 제작된 신작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빛을 사용하는 또 다른 대가 댄 플래빈(1933~1996)의 1984년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뉴욕 출신 미니멀리즘 예술 거장 플래빈은 전시장 모서리에 형광등을 설치해 마름모꼴 빛을 만들어낸다.

형광등에서 나오는 강렬한 색채가 회화 같은 존재감을 불어넣으며 공간을 장악한다.

8월 14일까지.
'빛의 마술사'들이 만든 빛과 공간의 예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