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세상] 지친 삶 '덕질'로 달래는 '송가인 팬픽' 인기
"그거 자네 어머님이 좋아하는 송가인이가 광고하는 음료수여."
"송가인요? 그 가수 송가인?"
"아이고, 김씨네 아들네미는 몰랐는가 보네. 자네 어머님이 송가인 팬이라네. 그래서 팬카페도 내가 가입시켜드렸고, 송가인 덕분인지는 몰라도 얼굴도 많이 좋아지신 거 같더구먼."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온 63세 여성 김씨가 송가인을 좋아한다는 이 이야기는 어딘가에 있을 법 하지만 실제로는 허구이다.

'어느 63세 어게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송가인 팬 카페에 연재되는 팬픽(Fan Fiction·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소재로 쓰는 소설)의 내용인 것. 카페 회원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입소문이 난 이 팬픽 작가는 송가인 팬인 미용사 한동진(44)씨다.

[SNS 세상] 지친 삶 '덕질'로 달래는 '송가인 팬픽' 인기
팬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이들의 연애를 위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존 팬픽과 달리 송가인 팬픽에서는 50·60대 팬이 '덕질'에서 겪는 고충이나 송가인 노래로 지친 삶을 달래는 일상이 주를 이룬다.

"10여년 전에 다쳐서 거동이 쉽지 않아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먹고살기 바쁜 타향살이, 자식들과 왕래가 잦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티브이에서 송가인이란 가수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중략) 카페 가입해서 송가인님이 잘 되는 걸 내 자식이 잘되는 것처럼 응원하며 행복해하며 노래를 듣고 영상을 봅니다.

너무나 좋습니다.

" ('어느 63세 어게인 이야기' 중)
글쓴이 한씨는 광주 전남대 후문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

지금은 글쓰기와 관련 없는 직업에 종사하지만, 글솜씨 있다는 말은 듣고 살았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연애 편지를 대필해줬고, 대학에서 대학신문 기자로 활동할 정도로 글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대학 졸업 뒤 생업에 바빠 한동안 글을 멀리했던 그가 근 20년 만에 펜을 다시 쥔 이유는 가수 송가인에 대한 팬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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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는 "원래 발라드만 듣고 트로트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며 "팬카페 활동도 이번에 처음 해본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가 추천해서 '미스트롯'을 봤는데 송가인씨가 정말 엄청났다"며 송가인 팬이 되며 다시 만난 세계에 대한 소감을 피력했다.

처음에는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기만 했다.

그러다 하루에 한 편 가량 팬픽을 써서 올리게 된 계기는 나이가 많은 다른 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다.

한씨는 "서비스업을 하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스밍'(음원을 반복해서 스트리밍하는 것을 줄인 말)이 뭔지 몰랐다"며 "저보다 나이 드신 분들은 더 모를 거 아니냐. 팬픽 주인공이 젊은 사람에게 스밍 하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를 넣음으로써 다른 팬들에게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이에 상관없이 다 같은 팬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30분∼1시간 정도를 투자해 이야기 뼈대를 구상한다.

그리고 다음 날 밤이나 새벽에 뼈대에 살을 붙여 이야기 한 편을 완성해 올린다.

쓰는 데 보통 3시간 정도가 든다.

팬카페에서 오가는 말이나 역시 송가인 팬인 70세 어머니와 나눈 대화 내용에 상상을 더해 쓴다.

[SNS 세상] 지친 삶 '덕질'로 달래는 '송가인 팬픽' 인기
그가 팬픽을 올리면 팬들의 다양한 반응이 댓글로 달린다.

구독층 다수가 나이가 많다 보니 글씨가 작아서 글을 읽을 때 안경을 끼고 봐야 한다는 반응이 많다.

이젠 흔해져 버린 스마트폰이 아니라 폴더폰을 쓴다는 독자도 있고 팬픽을 보며 운다는 댓글도 있다.

또 팬픽 내용이 실제 상황인 줄 착각하는 이들도 많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설정된 주인공에게 한 카페 회원은 "어르신 동작구 어디 신가요? 주소 보내주시면 떡 좀 보내드릴게요.

떡집을 운영하고 있으니 부담 갖지 마세요"라는 훈훈한 착각성 댓글을 단 적도 있다.

다른 회원은 음원 살 돈이 없는 주인공에게 "**(음원 애플리케이션) 가입만 하시면 전곡 보내드립니다.

주제넘은 것 같아 망설이다 댓글 씁니다"라며 조심스레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팬 카페 분위기를 보면 저희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라는 한씨는 어머니에게 '스밍'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함께 송가인 노래를 즐긴다.

팬픽을 쓰는 원칙은 나중에 읽어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것. 그래서 다른 아이돌 팬픽과 달리 송가인과 누군가가 연애하는 내용은 넣지 않는다.

가수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른다는 게 그 이유다.

한씨는 송가인 팬이 되면서 10대들의 팬 문화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저도 송가인씨를 응원하기 전에는 팬 문화를 안 좋게 봤어요.

학교 빠지고 콘서트 따라다니고, 용돈 빼돌려서 굿즈 산다는 이미지가 컸죠. 그러던 제가 굿즈를 사고 팬픽을 쓰고 있네요.

물론 제 팬픽에 대한 의견도 갈리겠지만, 팬픽은 좋아하는 가수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일 뿐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