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이조스가 미국 텍사스에 추진 중인 만년시계 프로젝트.  롱나우재단 유튜브 캡처
제프 베이조스가 미국 텍사스에 추진 중인 만년시계 프로젝트. 롱나우재단 유튜브 캡처
스마트폰 화면을 엄지와 검지로 벌려 확대하고 좁혀서 축소하는 ‘핀치 투 줌(pinch to zoom)’이란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사람은 미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대니 힐리스다. MIT 미디어랩을 설립한 건축가 니컬러스 네그로폰테의 소개로 프랑스 파리에서 힐리스와 만난 스티브 잡스는 이 기발한 생각을 애플 제품에 적용했다.

힐리스의 또 다른 아이디어 ‘만년 시계’는 아마존의 수장 제프 베이조스와 연결됐다. 1만 년 동안 존재해온 인류 문명의 다음 1만 년을 헤아리는 시계다. 초침은 1년에 한 번, 분침은 100년마다 한 번 움직인다. 베이조스가 텍사스에 있는 그의 사유지에 시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힐리스의 생각은 현실이 돼가고 있다. 높이가 152m에 달하고 강철과 티타늄 부품으로 제작된 이 시계 제작 프로젝트에 베이조스가 투자한 돈은 4300만달러(약 507억원)다.

[책마을] 예술과 과학 넘나들 때 '위대한 창조물' 나온다
《창조성에 관한 7가지 감각》을 쓴 데이비드 에드워즈는 이 같은 힐리스의 능력을 ‘미학적 직관’이라고 칭한다. 처음 가보는 길을 개척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을 때 필요한 것은 논리와 전략이 아니라 직관이다. 책은 창조를 추구하는 뇌에서 나타나는 감정적이고 인지적인 신경 상태를 파고든다. 직관과 함께 열정, 공감, 순수함, 겸손, 지능, 집요함을 창조에 필요한 일곱 가지 미학적 요소로 꼽는다.

저자는 응용수학자이자 생명공학자다. 필터가 필요 없는 식물 공기청정기, 기체 형태로 된 흡입형 초콜릿, 디지털 향수 같은 발명품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발명가들의 연구와 경험을 공유하는 ‘세계 개척자 포럼(World Frontiers Forum)’ 창립자이기도 하다. 하버드대 비스연구소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창조성 강의에서 출발한 이 책을 통해 그는 직관과 연역의 경계를 지우고 예술과 과학이 교차하는 창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우선 저자는 창조에 대한 접근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대중의 요구를 즉각적으로 반영하고 당장의 이익을 중시하는 ‘상업적 창조’다. 상업적 창조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줬지만 환경 오염을 야기하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측정할 수 없는 미래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 것도 맹점이다.

‘문화적 창조’는 사고나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한 사람의 경험과 예술적 취향을 드러내는 식으로 개인의 욕구 충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속 가능성이 결여된 ‘상업적 창조’와 개인의 만족이라는 한계를 지닌 ‘문화적 창조’를 넘어 저자가 주목하는 창조의 방식은 ‘미학적 창조’다. 미학적 창조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이익이나 문화적 영향력에 좌우되지 않는다. 저자는 “그들은 미학적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개척자의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며 “창조적 과정을 설계하고 문화 실험실을 기반으로 대중과 함께 창조적 대화를 나눔으로써 중요한 것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힐리스를 포함해 과학, 정보기술(IT) 분야뿐 아니라 ‘모더니스트 퀴진’이라는 새로운 요리 영역을 개척한 스페인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 아메리칸 레퍼토리 시어터의 예술감독인 다이앤 파울루스 등 창조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 저자가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본 사람들의 일화와 사례를 들어 흥미를 더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히 ‘직관은 예술이고 연역은 과학’이라는 이분법적인 편견도 지워진다. 저자는 판테온을 예로 들며 “사실 많은 창조물은 예술과 과학의 조합”이라며 “과거의 오랜 미학적 전통에서 미술과 과학은 같은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라고 강조한다.

미학적 창조를 향한 욕망과 열정의 기반엔 후원자들의 지원과 가능성의 문화로 찬 공간도 필요하다. 힐리스가 저자에게 남긴 말은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꾸는 결과물로 나타나기까지 대학과 기업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1만 명의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고 1000명이 실제로 도전을 합니다. 그중 100명이 성공에 가까운 뭔가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10명이 아이디어를 실현에 옮기죠.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그것을 세상에 퍼뜨립니다. 우리는 바로 그 한 사람을 발명가라고 부릅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