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오페라단 모차르트 오페라 공연리뷰

호색한, 사기꾼, 살인자인 돈 조반니가 마침내 지옥에 떨어질 때 무대를 가득 채운 실감 나는 불길은 실제가 아닌 영상이었다.

해상도와 밝기를 현저히 개선한 기술력과 위트 넘치는 발상 덕분에 3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를 채운 영상은 과거처럼 거부감이나 생경한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오페라 무대로는 지나치게 넓은 이 공연장의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을 했다.

오페라 무대에 영상을 사용하는 것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로, 비교적 전통적인 연출을 선호해온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나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까지도 요즘은 적극적으로 영상을 무대에 도입하고 있다.

영상과 조명으로 승부한 감각적 무대 '돈 조반니'

30일 개막한 서울시오페라단 '돈 조반니'는 최근 연임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경재 단장의 연출작이다.

희극 오페라 연출에 탁월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이단장은 2008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재개관 기념 '돈 조반니'의 성공적인 연출로 이미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사실 모차르트 오페라들은 3천 석이 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기에는 지나치게 규모가 작다.

대극장 무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알면서도 서울시오페라단이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인기 레퍼토리 공연을 통해 더 많은 초심자를 오페라 관객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지의 반영일 것이다.

중극장이나 소극장 규모에 적합한 소소한 웃음 코드는 대극장에서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연출가는 연출의 독특한 방향성을 드러내지 않고 원작에 충실한 연출 방식을 택했다.

다만 모차르트의 원작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한 가지는 2막 피날레였다.

등장인물 여덟 명 중 죽은 기사장과 돈 조반니를 제외한 여섯 명은 돈 조반니가 지옥으로 끌려간 직후에 무대로 달려 나와 '그 악당은 어디에?'라는 중창으로 피날레를 장식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이 6중창 없이 주인공의 죽음으로 극이 끝난다.

200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화제가 된 클라우스 구트의 연출이나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카스퍼 홀텐의 영화 '후안'처럼 6중창을 지워버린 '돈 조반니'는 더러 볼 수 있다.

악이 제거된 세계의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6중창을 빼고 주인공의 죽음으로 극을 마무리하는 연출가들은 희비극인 '돈 조반니'의 비극적 성격을 강조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 연출에서 마지막 중창이 빠진 이유는 그런 이유보다 불길에 휩싸인 극적인 무대로 관객들에게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영상과 조명으로 승부한 감각적 무대 '돈 조반니'

정승호가 디자인한 무대와 김보슬의 영상, 그리고 김민재의 조명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오차 없는 깔끔한 조화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특히 필요한 순간마다 무대 위에 빛으로 그려내는 계단이나 창틀, 묘지 장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사장의 얼굴, 돈 조반니의 마을과 저택을 멀리 보여주는 배경화 등은 극의 분위기와 적절하게 어울려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사회규범과 대립하는 돈 조반니의 개성을 강조한 이주희의 의상도 효과적이었다.

공연 중에 주위 관객들의 작은 웃음소리를 끊임없이 들을 수 있었다.

연출의 유머 감각과 몇몇 가수들의 희극적인 연기 덕분이기도 했지만 최신 유행어를 적절하게 사용한 감칠맛 나는 자막 번역 역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데 큰 몫을 했다고 본다.

바리톤 한규원은 기품과 야비함을 동시에 담아내는 정교한 표현력으로 타이틀 롤을 뛰어나게 소화했다.

에너지 넘치는 '포도주의 노래'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세레나데'의 뚜렷한 대비는 특히 일품이었다.

돈 조반니보다 더욱 복합적인 다면성을 보여주어야 하는 하인 레포렐로 역의 베이스 손혜수는 노련한 연기로 극을 이끌어가며 돈 조반니와 유쾌하게 호흡을 맞췄다.

체를리나 역의 소프라노 강혜정은 대극장에서도 명징하게 전달되는 가창과 경쾌한 연기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이탈리아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는 자신이 음악감독을 맡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유연하게 이끌었다.

극장 규모 때문에 오케스트라를 일반적인 모차르트 오페라 연주 인원보다 훨씬 크게 늘렸지만 음량은 가수들의 음량에 맞춰 적절히 조절했다.

전반적으로 해석의 깊이와 사색이 느껴지는 연주였지만, 오케스트라와 성악이 민첩하게 한 몸처럼 리듬을 타야 하는 부분에서 모차르트 특유의 민첩함과 생동감이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전날 리허설에서 본 두 번째 팀이 전반적으로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은 더 좋았다고 본다.

공연은 11월 2일 토요일까지.
영상과 조명으로 승부한 감각적 무대 '돈 조반니'

rosina@chol.com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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