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방문…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
[부산영화제] 고레에다 "다층적 모녀 관계, 카트린 드뇌브 매력 담았다"
"한국 영화 100주년이 되는 경사스러운 해에 이런 상을 받게 돼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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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57) 감독이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들고 영화제를 찾았다.

부산영화제가 주는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부산영화제는 제가 감독 데뷔 이후 숱한 고난을 극복하면서 같은 세월을 함께 걸어온 영화제"라며 "그런 영화제가 주는 상이어서 더욱더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신작은 오랜 세월 갈등을 겪던 모녀가 어머니의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재회해 일주일간 함께 보내면서 서로 갈등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고레에다가 처음으로 일본을 벗어나 촬영한 작품으로, 프랑스 대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쥘리에트 비노슈가 모녀로 출연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하다.

극 중 주인공인 '왕년의 스타' 파비안느(카트린 드뇌브)는 요리를 해주는 새 연인, 40년간 그녀 곁을 지킨 매니저와 함께 공주처럼 지낸다.

성격도 까칠해 입만 열면 불평, 불만에다 남을 깎아내리기 바쁘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회고록을 펴낸다.

늘 고압적이고 자신에게 소홀했던 엄마에게 벗어나고 싶어 뉴욕에서 살던 딸 뤼미에르(쥘리에트 비노슈)는 회고전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파리로 온다.

하지만 자신에 관한 내용을 허구로 쓰거나 소중한 사람들에 관한 내용은 쏙 빼놓은 '아전인수식' 회고록을 본 뒤 불같이 화를 내고 엄마와 갈등을 겪는다.

[부산영화제] 고레에다 "다층적 모녀 관계, 카트린 드뇌브 매력 담았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을 비롯해 전작들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짚었던 고레에다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가족 간의 미묘한 감정과 갈등을 굉장히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그는 "가족 드라마를 의도했다기보다 '연기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면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묘사하고 싶었고, 카트린 드뇌브의 매력을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게 여배우이자 할머니, 어머니, 딸의 모습 등으로 다층적으로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영화계 살아있는 전설 카트린 드뇌브는 주인공과 겹쳐 보일 정도로 명불허전 연기를 선보인다.

'현실 모녀'가 영화의 한축이라면 파비안느가 찍는 '극 중극'은 또 다른 축이다.

파비안느는 우주로 나가 늙지 않는 엄마와 지구에 살면서 나이 들어가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 SF영화에서 늙고 병든 딸을 연기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카트린 드뇌브는 영화사 속에서 빛나고 있고, 현역으로 활약하는 여배우"라며 "그 배우의 매력을 이 작품에서 다면적으로 표현하는 게 큰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쥘리에트 비노슈에 대해선 "10여년 전부터 교류해온 사이"라며 "저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거기에 보답할 수 있는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어봤다"고 설명했다.

[부산영화제] 고레에다 "다층적 모녀 관계, 카트린 드뇌브 매력 담았다"
"이 영화는 거짓과 허구가 뒤섞인 '진실'이라는 자서전을 쓴 어머니에게 딸이 찾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딸에게도 자신을 속였던 자신만의 역사가 있죠. 두 사람은 새로운 관계를 써 내려가기 위해 연기도 하고, 마술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서로가 도달하고 싶었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죠."
신작은 고레에다의 전작들보다 한층 더 밝고 유쾌한 편이다.

그는 "제 영화를 보면 어둡고 무겁다는 인상을 받는 분들이 많은데, 이 작품은 밝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촬영 당시 뒷얘기도 들려줬다.

고레에다 감독은 "에펠탑이나 개선문 등 그림엽서에서 줄곧 봐온 풍경은 가능한 한 피하려 했고, 일상적인 풍경과 동네에서 사는 모습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떠올렸다.

프랑스 배우, 스태프와 작업했지만, 의사소통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뛰어난 통역사의 도움을 받았고, 언어로 직접 소통할 수 없는 만큼 손편지를 많이 써서 전달했죠. 사실 10여년 전에도 배두나와 작업한 적이 있어요.

공통언어는 없었지만, 촬영을 거듭하면서 다음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언어를 넘어서 공유할 수 있게 됐죠. 언어를 뛰어넘는 게 영화를 만드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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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고레에다 "다층적 모녀 관계, 카트린 드뇌브 매력 담았다"
극의 주요 배경은 파비안느의 집안 내부다.

고레에다 감독은 "일본에서 촬영하면 집 내부 이동 거리를 대충 짐작할 수 있는데, 프랑스 집은 너무 넓어서 거실과 부엌, 계단까지 거리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없었다"며 "시나리오 완성 전에 파비안느 집에 직접 가서 대본을 들고 구석구석 걸어 다니며 대사 분량과 맞춰봤다"고 회상했다.

그는 최근 한일 갈등에 대한 견해를 묻는 말이 나오자 "예상했던 질문"이라고 운을 뗀 뒤 "5년 전쯤 부산영화제가 정치적 압력으로 개최가 어려웠을 때 저를 비롯한 세계 영화인들이 지지의 목소리를 냈다"면서 "정치적 문제 등 여러 고난을 겪을 때 영화인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이 자리에도 그런 영화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에둘러 답했다.

"저는 대만 허우샤오셴이나 이창동 감독, 지아장커 감독 등 동시대 아시아 동지들이 만든 작품들에서 자극을 받고 영감을 받습니다.

저 또한 그분들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25년간 영화를 해왔죠. 영화제나 영화 현장 등에서 영화인들과 교류하다 보면 국가나 어떤 공동체보다 훨씬 더 크고 풍요로운 영화라는 큰 공동체 안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국적과 상관없이 서로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영화를 통해 연대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을 느꼈을 때 정말 행복합니다.

그런 시간을 거쳐오면서 저 역시 영화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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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