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세의 김병기 화백이 서울 평창동 작업실에서 신작 ‘산의 동쪽-서사시’를 설명하고 있다.
103세의 김병기 화백이 서울 평창동 작업실에서 신작 ‘산의 동쪽-서사시’를 설명하고 있다.
오른손에 붓을 들고, 왼손은 쥐거나 휘저으면서 그림을 설명한다. 색채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순간에 형상과 비형상의 세계를 숫자로 명쾌하게 비유한다. 그림은 ‘1+1=2’가 되는 절충이 아니라 합쳐지면 무엇이든 다 되는 ‘종합’이란다. 형상과 비형상은 동전의 앞뒷면에 불과하다며 그 틈새를 파고들어 노자의 무위(無爲)사상을 연출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붓을 들고 있다는 말이 생경하다. 한국 추상미술 1세대 작가 김병기 화백의 목소리는 103세에 어울리지 않게 아직도 쩡쩡하다.

10일 생일에 맞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김 화백은 “오늘도 붓질을 하면서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 즐겁고 행복하다”며 “예술에 ‘완성’이란 게 없고, 창작 당시의 정신과 형상을 기록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1916년 4월 평양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도쿄에서 서양화를 배운 부친(김찬영)의 뒤를 이어 자신도 일본에서 유학하며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등과 함께 한국 근대미술 정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48년 월남(越南)한 그의 치열한 삶의 족적은 디아스포라(이산)의 아픔을 떠올리게 한다. 월남 전에는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월남 후에는 한국문화연구소 선전국장, 종군화가단 부단장, 서울대 강사, 서울예고 미술과장을 지냈다. 1965년 한국미술협회 3대 이사장으로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했다가 홀연히 미국에 정착한 그는 2015년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이듬해 서울 평창동에 작업실을 차리고 인근 북한산과 건물, 사람과의 관계 등을 화면에 녹여내고 있다.

다음달 12일까지 ‘지금, 여기’를 테마로 여는 이번 전시에는 2016년 이후 서울에서 작업한 대작 10점과 구작 9점을 걸었다. 전시 작품들은 70년 이상 고집과 끈기로 죽어라 그림에만 매달린 전업 작가의 삶이 얼마나 치열할 수 있는가를 가감 없이 내보인다.

평생의 화업을 ‘열정의 산물’로 규정한 그는 자신의 그림을 ‘정신성(精神性)과의 조화를 통해 현실 세계를 담아내는 방식’이라고 했다. 인간의 감정이나 관념들과 같은 정신성을 화면에 구현해야지 눈에 보이는 형상만을 그대로 재현한 회화는 모방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수직과 수평의 기하학적 영향을 거침없이 내보이며 추상과 구상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도심 사이에 뚫린 도로처럼 그의 풍경 속에는 직선이 달린다.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이 직선은 화면을 긴장하게 한다.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붓의 흔적, 마스킹 테이프를 붙였다 떼어 만든 여백은 동양의 무위 개념을 여실히 드러낸다.

김 화백은 “뉴욕에서 돌아와 북한산을 바라봤을 때는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을 정도로 가슴이 미어졌는데 이런 화면 분위기는 서울 생활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최고령 화가가 아니라 그냥 ‘화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나이가 들수록 새롭고 혁신적인 것에 더 애착이 간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르셀 뒤샹의 ‘샘’을 직접 보기 위해 얼마 전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죠. 미술혁명이 어떻게 시작됐나 직접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요즘에는 기하학적 추상의 대가 몬드리안의 미학에 동양의 정신을 합쳐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화백은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도 남달랐다. “중섭(이중섭)이는 평양 종로보통학교 단짝이죠. 김환기는 일본 유학시절 도쿄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서 처음 만나 술도 많이 마셨지요. 천재 시인 이상과 도쿄 하숙집에서 잠을 자다가 낙수 소리에 착안해 작품을 구상한 적도 있고요. 1950년대 말 유영국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동서양 미술에 두루 밝을 뿐 아니라 한평생 붓을 놓은 적이 없는 ‘103세 현역’의 건강 비법이 궁금했다. 지난해 폐렴에 걸려 고생을 많이 했던 그는 “늙어서도 작업할 수 있는 것은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소식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평창동 작업실에서 라디오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작업해요. 바흐, 모차르트, 하이든의 선율이 참 아름답죠. 그림과 음악에서 나오는 ‘행복 바이러스’가 저를 지탱해준다고 생각해요.”

그는 “육식이든 채식이든 중요한 건 소식”이라고 강조했다. 신선한 채소, 커피·토스트·치즈·불고기를 즐겨 먹고 삶을 기쁘게 생각하며 와인 한 잔씩은 가끔 해도 절주하며 사는 게 그가 걸어온 일상이라고 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