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숲에 담긴 사연들, 그곳엔 사람과 역사가 있더라
숲은 나무들의 경쟁을 통해 형성된다. 나무들은 각자 살아남고자 치열하게 햇볕을 노린다. 광합성을 해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햇볕 전쟁’을 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다. 상대방과의 ‘사이(間)’를 지킨다. 나무는 사이가 좋아야 숲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론 상대의 영역을 최대한 존중한다.

생명의 공간인 숲은 인간에 의해 고통받아 왔다. 인간은 숲을 파괴하고 나무를 이용하면서 문명을 발달시켰다. 최근 치유의 공간으로 재조명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은 나무를 낮은 존재로 인식하고 함부로 다룬다. 생명의 공간으로서 숲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아쉽다. ‘나무 인문학자’인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는 《숲과 상상력》에서 전국 유명 숲을 소개하며 인간과 나무의 상생을 이야기한다. 6년에 걸쳐 찾아간 숲속 곳곳에는 인간이 나무와 함께한 사연이 담겨 있다.

인문학적으로 숲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想像)의 ‘상(想)’은 나무(木)와 눈(目)과 마음(心)의 결합이다. 상상은 눈으로 본 나무를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나무는 상상의 원천이고, 상상은 나무를 통해 더 왕성하게 이뤄진다고 말한다.

이 책은 ‘사찰과 숲’ ‘역사의 숲’ ‘사람과 숲’ 3부로 구성돼 있다. ‘사찰과 숲’에서는 마음을 중시하는 불교와 관련된 숲이 소개된다. 저자는 강원 평창 월정사의 전나무숲에서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곧게 뻗은 전나무를 보며 인간이 평생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한다. 충북 보은 법주사의 오리숲은 계곡과 어우러져 물속에 비친 나무와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경남 합천 해인사 소나무숲, 전남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숲 등 사찰을 둘러싼 숲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정화하는 장소를 제공하고 문화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역사의 숲’에서는 역사의 현장으로 남은 숲이 펼쳐진다. 경남 함양 상림은 신라시대 최치원이 조성한 최초의 인공 숲으로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는 점이 놀랍다. 강원 횡성 청태산 잣나무숲은 이성계가 휴식하면서 횡성 수령에게 점심 대접을 받은 곳이다. 아름다운 산세에 반하고 큰 바위에 놀라 청태산이란 휘호를 써서 횡성 수령에게 하사했다. 제주 절물자연휴양림은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 ‘제주 4·3 사건’의 상흔을 품고 있다.

저자는 사람의 숭고한 정신 덕분에 조성된 숲들도 보여준다. 전남 장성 편백숲은 임종국 선생이 1956년부터 21년간 조성한 숲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헐벗은 산림을 복원하는 일이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고 100만㎡의 땅을 매입해 빚을 내가면서 평생 숲을 가꿨다. 광양 청매실농원은 일제강점기 김오천 선생이 광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밤나무와 매실나무를 심어 가꿨다. 화순 숲정이는 16세기쯤 물 관리를 위해 조성된 인공 숲으로 마을 사람들이 오랜 세월 함께 보존해 왔다. 울산 태화강 대나무숲은 한때 울산시가 주택단지로 개발하려고 했지만 시민들의 반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저자는 “숲을 파괴하는 것도 인간이지만 숲을 살리는 것도 역시 인간”이라며 “나무를 만나는 시간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