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어떤 미화도, 묘한 자랑도 없이 담담히 그려낸 산티아고 순례길
신간 여행에세이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담은 다른 여행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순례길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치유받았다는 내용이나 ‘산티아고 신흥 종교 신자’와 같은 느낌을 주는 맹목적 찬양을 찾기 어렵다. 저자 박재희는 그저 그 길에서 행운 같은 일들을 경험하고 함께 걸었던 수많은 타국인의 아픔과 상처를 가만히 들어줬을 뿐이다. 제주 올레길은 물론 일본 시코쿠 순례길, 뉴질랜드 트레킹 등 트레킹을 밥 먹듯 다니는 저자에게 산티아고는 세상과 떨어져 걷고 싶다고 생각한 여러 길 중 하나였다.

5일 인터뷰에서 저자 박재희는 “모두 인생에 다시 없을 경험이라고 칭찬하지만 나는 순례길에 들어선 첫날 피레네산맥을 걸을 때부터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며 후회와 자책부터 했다”고 입을 열었다. 또 남들은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감동하며 울었다지만 저자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가 이 길을 걸은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함께 순례길을 걷기로 했던 친구의 죽음과 어머니의 숙환, 쳇바퀴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인생을 리셋해보고 싶은 마음 정도였다. 델컴퓨터, EMC 등 글로벌 정보통신기술 업체의 마케터를 거쳐 지금은 모모인컴퍼니 대표를 맡고 있는 저자가 과연 무엇을 리셋하고 싶었을까 궁금하게 한다. 저자는 40일 동안 걸었던 이 길을 “나를 발견하는 길이었다”고 털어놨다.

[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어떤 미화도, 묘한 자랑도 없이 담담히 그려낸 산티아고 순례길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이베리아반도에 복음을 전파한 800㎞나 되는 먼 길을 걸으며 저자는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했을까. ‘화살표’였다. 산티아고 순례자들은 곳곳의 노란색 화살표를 이정표 삼아 걷는다. 때론 화살표가 없어 앞선 여행자들은 돌을 모아 화살표를 만들어 놓는다. 저자는 “어느 순간부터 ‘내 노란 화살표는 어디로 향할까’라는 궁금증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른 도착해야겠다는 생각보단 ‘이들처럼 나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먼저 놓아줄 수 있는 노란 화살표가 있을까, 과연 뭘까’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었다”고 했다. 나를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나라는 존재는 세상과 분리돼 고고하게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걸 저자는 깨닫는다.

저자는 각자의 ‘나’가 걷는 인생길 중 하나가 산티아고일 뿐이란 점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는 “40일 동안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은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못한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각자 ‘나’로서 그 길을 걸어갔다”며 “비록 산티아고를 걷지 않더라도 책을 통해 어떤 삶이든 그 자체로 모두 괜찮고 아름답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