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작가들이 매일 수많은 소설을 쏟아내고 있지만 지구촌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블록버스터 소설'은 극소수다. 이들이 거둔 성공의 특별한 비결은 무엇일까. 출판 격주간지 <기획회의> 251호는 특집 '세계시장을 흔드는 블록버스터 소설'을 통해 그 이유를 분석했다.

문학평론가 김성곤씨는 기고문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에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에는 시대적 관심사가 반영돼 있다"고 진단했다.

일례로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표현한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은 모든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나 저항과 해방을 추구하는 '시대적 요구'를 담아냈기 때문에 1930년대에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다고 김씨는 분석했다.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또한 젊은이들의 반(反)문화 정서를 대변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김씨는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등 금세기의 블록버스터 소설에는 이와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통 역사에 대한 불신과 숨겨진 역사의 복원,정통과 이단의 경계 해체,독선에 대한 비판 등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인식들이 《다 빈치 코드》의 성공을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또 역사추리소설 열풍을 몰고 온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성스러움과 세속성의 경계를 해체하는 등 포스트모던적 인식을 보여주고,스티븐 킹의 작품에는 워터게이트 사건,현대성을 상징하는 휴대전화,생화학무기 등에 대한 정치적 · 사회적 비판이 녹아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 역시 단순한 아동용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선악의 불확실성,혼혈 문제,타인에 대한 편견 등 현대인들이 고민할 법한 철학적인 주제를 품고 있다.

박현용 한양대 강사는 스웨덴 추리 스릴러 소설 《밀레니엄》이 스웨덴 국민 10명 중 3명이 읽은 데다 프랑스,이탈리아,덴마크,독일,스페인 등에서 밀리언셀러가 된 배경에 대해 '위대한 사회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연쇄살인,재벌 비리,공권력 남용 등 사회적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가 일본에서 발행 한달 만에 180만부를 돌파하는 등 '하루키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에 주목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일본판 9 · 11 테러'로 불릴 만큼 일본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옴진리교 사린가스 살포사건의 의미를 정면으로 다룬 게 《1Q84》의 성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블록버스터가 거둔 찬란한 성공 뒤에는 그림자가 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아마존,반스앤노블 등 온라인 서점들이 《해리 포터》 시리즈 판매가를 40~50%까지 낮춰 일종의 미끼 상품으로 활용했던 사례를 제시하며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출판사들이 시장을 타락시켰다"고 지적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