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 "(프롤로그)

지난 9일 암 투병 끝에 57년간의 생을 마감한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다섯 번째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 펴냄)이 타계 하루 뒤인 10일 출간됐다.

우리시대 대표 수필가로 꼽히는 고인은 3월 말 출판사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한 원고를 넘기고 4월 말 병상에서 직접 마지막 교정까지 봤으나 책 인쇄를 마친 8일에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장 교수가 2000년 이후 월간 <샘터>에 '새벽 창가에서'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모은 이 책에는 순탄치 않았던 고인의 생애 마지막 9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생후 1년 만에 찾아온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됐지만 이를 극복하고 영문학자로 강단에 서 '희망의 등불'이 됐던 그는 보통 사람이 한번도 감당하기 어려운 암 판정을 세 번이나 받았다.

2001년 미국 보스턴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중 유방암 판정을 받았고 방사선 치료로 완치된 후 2004년 다시 암이 척추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2년간의 항암치료를 마친 뒤에는 암이 간까지 전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다시 한번 암과 싸우면서 유고집이 되어버린 이 책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어둡거나 무겁지 않았다. 세상 사는 사람들의 소박하고 정겨운 이야기는 따뜻한 긍정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투병기에서도 삶을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맞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아파서,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

고인은 세 번째 암 투병 중에 쓴 에필로그에서도 자신이 곧 물에 잠길 운명인지도 모른 채 아름다운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눈먼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기적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1975년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1985년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작으로 《내 생애 단 한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 등이 있다. 선친인 고(故) 장왕록 박사와 함께 펄벅의 《살아있는 갈대》를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번역문학상과 올해의 문장상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유족으로는 모친 이길자 여사와 오빠 장병우 전 LG오티스 대표,언니 영자씨와 여동생 영주 영림 순복씨 등 네 자매가 있다. 13일 서강대에서 열리는 장례미사 후 아버지가 묻힌 충남 천안의 공원묘지에서 영면에 들어간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13일 오전 9시.(02)2227-7550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