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출간된 '창비시선' 1호는 신경림 시인의 시집 《농무》였다. 내면을 탐구하는 난해한 시가 주류를 이루었던 당시 시단에 '사람이 살고 있는 현실'을 조명해 큰 충격을 던졌던 시집 《농무》는 지금도 널리 읽히는 '스테디셀러'다.

하지만 《농무》가 출간 이후 지금까지 몇 부 팔렸고 몇 쇄를 찍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당시 정권이 긴급조치 발동에 의거해 판매금지 조치를 취하는 통에 공식적으로 중쇄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쇄는 무사히 넘어가도 다음 쇄를 찍으면 납본하게 한 다음 실질적으로 사후검열을 해 판매금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창비시선으로 시집 9권을 발표해 최다 기록을 세운 신 시인은 "당시에는 창비시선의 장수를 예상하지 못했다"며 그때의 엄혹함을 설명했다.

그렇게 시작한 창비시선이 기념시선집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박형준 · 이장욱 엮음)를 내며 35년 만에 300호 출간을 기록했다.

창비시선의 등장은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총서',문학과지성사의 '문학과지성 시인선'과 더불어 시집의 상업 출판 시대를 열었다. 이전에는 시집 대부분이 자비출판 형식으로 출간됐다.

초창기 창비시선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2호 조태일 시인의 《국토》를 시작으로 총 5종이 줄줄이 판매금지됐다. 1982년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출간했을 때는 당시 창비 편집장이던 이시영 시인이 연행당하기도 했다.

이 시인은 "판매금지가 되면 아예 시집이 시중에 나가지도 못하거나 모두 회수해야 해서 재정적 압박도 컸다"면서 "하지만 《타는 목마름으로》는 판매금지되고 나서 복사본이 돌면서 독자들에게 널리 읽혔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에는 초대형 베스트셀러도 나왔다. 최영미 시인의 《서른,잔치는 끝났다》는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51만3500부가 팔려나갔다. 박노해 시인의 《참된 시작》은 10만7000부,정호승 시인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12만3000부가 판매됐다. 2000년대에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가 2만5000부,정호승 시인의 《포옹》이 2만부를 넘겼다. 김선우 시인의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손택수 시인의 《호랑이 발자국》,문태준 시인의 《맨발》 등 젊은 시인들의 시집도 1만부 판매를 넘어서는 저력을 과시했다.

창비 측은 "김용택,나희덕,정호승 등 우리 문단의 중요한 시인들의 첫 시집이 창비시선에 많이 수록돼 있다는 게 자부심"이라고 밝혔다.

이시영 시인은 "1970~1980년대에는 창비시선의 확고한 정체성 아래 리얼리즘에 입각해 현실에 대해 웅변하면서 미학적으로 완성도를 갖춘 시집을 출간했다"면서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생태주의나 여성주의 서정시 등을 수용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미래파' 등 젊은 시도 받아들였다"고 창비시선 35년의 변화를 설명했다.

이 시인은 "수용폭은 넓어졌지만 '사람과 삶'이라는 주제는 창비시선의 전통이자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창비시선 300호는 201호부터 299호까지 시집을 낸 시인 86명의 작품에서 '사람과 삶'을 주제로 시 한편씩 가려뽑은 시선집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가 됐다.

시선집을 엮은 박형준 시인은 창비시선의 이후 지향점에 대해 "새로운 개성을 수용해 나가는 큰 틀에서 리얼리즘을 갱신하면서,바뀐 환경에서 사회와 사람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희덕 시인은 "시선에 참여하는 시인들이 더 젊어져야 한다"면서 "창비시선이 1970~1980년대에는 사회적 공동체를 추구했다면 이제는 언어적 공동체를 이루어 '미래파' 등 새로운 징후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향후 방향을 제시했다.

한편 300호 출간을 맞아 여러 기념행사도 열린다. 《농무》 등 주요 시집 36종 저자 사인본이 23일부터 온 · 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된다.

사인본은 종당 500부이며 가격은 동일하다. 또한 24일 수원교육청 대강당을 시작으로 6월 하순까지 광주,울산,부산,전주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신경림,이시영,정호승,백무산 시인 등이 참여하는 낭송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