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천재작가 이중섭은 비극의 시대를 살았다. 일본 여자를 아내로 두었고 피난시절 아내는 영양실조로 각혈을 하기도 했다. 1952년에는 아내와 두 아들마저 일본으로 보내야 했다. 이중섭은 53년 일 주일간 일본을 방문해 가족과 재회한 것을 제외하고 56년 적십자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는 날만을 기다렸다. 그로부터 50여 년 뒤 이 화백의 두 아들 중 둘째인 태성 씨(일본명 야마모토 야스나리)가 56살의 나이로 한국을 찾아왔다. 50여년간 소장해온 아버지의 그림이라며 8점을 들고 왔다.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부친의 묘소를 이장하고 아버지를 기념하는 사업을 펼치기 위해서다. 그런 그가 이중섭 그림을 대량 위조하는 조직에게서 아버지의 가짜 그림을 넘겨받아 국내시장에 유통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한 한국미술품감정가협회 때문에 명예가 훼손됐다며 협회를 고소했고 지난 2일 검찰진술에 응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앞서 태성 씨는 감정협회의 위작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30여 점을 더 들고 한국을 찾았다. 그러자 미술계 한쪽에서는 앞서 가져온 작품들이 가짜라는 것을 흐리기 위해 이번엔 진짜 이중섭 그림을 들고왔다는 주장도 나왔다. 여기다 시중에 진위가 불분명한 이중섭의 그림 650여 점을 갖고 있다는 소장자도 나타났다. 감정협회는 이 소장자가 이중섭의 친구였던 시인 구상 씨의 유족들과 이중섭 50주기 기념 미발표작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 방송사가 녹화한 이미지를 봤다면서 이 그림들이 모두 가짜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궁금한 대목 한 가지. 이중섭은 생전에 얼마 만큼의 그림을 남겼을까하는 점이다. 참고로 이중섭은 50년 12월초 원산에서 부산으로 남하하면서 그동안의 그림은 모두 모친에게 맡겼으며 월남 후부터 56년 9월 6일 숨질 때까지 채 6년이 못되는 기간에 부산과 제주, 통영, 대구, 서울 등지를 오가며 그림을 그렸다. 북한에 남긴 작품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내 미술계에 정확한 이중섭 관련 자료가 부족해 이 화백이 남긴 작품을 정확히 밝혀내기는 어렵지만 2000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전인권 씨의 평전 '아름다운 이중섭'에 따르면 이중섭이 남긴 작품은 유화 60여점, 은지화 120점, 드로잉 150점, 엽서화 88점 등 모두 320여 점으로 추산된다. 그중 1940-1943년 그려진 엽서그림을 빼면 나머지 230여 점은 모두 51년 이후 그려진 것이다. 전씨는 그러나 "여러 이유로 멸실된 것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 상황에서 이중섭처럼 그림을 많이 그린 사람은 외국의 경우에도 흔치 않다"고 덧붙였다. 금성출판사가 펴낸 '한국 근대 회화 선집'에서 시인 김광림 씨도 "틀어박혀서 무엇이든 표현이 가능한 스페이스만 있으면 그렸다. 따분해서 그렸고 , 배가 고파서 그렸고 , 처자가 그리워서 그렸다. 은박지는 물론 책 뚜껑에도 그렸고 시험지 조각에도 그렸고 장판지에도 그렸다"고 말했다. 시인 허만하 씨도 99년 '민족의 작가 이중섭,박수근전' 도록을 통해 "그는 불소시개로 태우다 건진 그림을 벗 최태응에게 맡기고 표현히 대구를 떠났다. 그의 그림은 주로 종이에 그린 것으로 커다란 봉투로 두 개가 되는 분량의 것이었다. 싸인이 있는 작품도 있었으나 에스키스나 커리커쳐도 있었다. 이 그림의 행방은 묘연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같이 흩어져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시인 고은 씨는 '이중섭 평전'을 통해 "어떤 사람은 무려 200점도 넘게 무더기로 훔쳐간 사람도 있다. 대구의 한 신문기자는 신문 문화면 삽화로 쓴다고 몇십 장씩 가지고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본에 떨어져 있는 가족에게 이 화백이 보낸 편지나 그림들에서도 이 화백이 얼마나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68년이나 69년경에는 이중섭이 대구의 과수원 오두막에서 생활하며 그린 그림과 유품들을 갖고 있다면서 유족에게 기증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러저런 사정 때문에 유족에게 전달되지 못했다고 유족은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증언이나 연구를 토대로 할때 지금까지 국내에 공개된 이중섭 그림 320여 점 외에도 이중섭의 작품이 더 나올 수 있다고 미술계 일부에서는 지적한다. 그러나 이중섭 그림은 새로 공개될 때마다 가짜라는 시비가 따라붙는다. 가짜라는 주장을 펼치는 측은 세부표현력이 기존에 공개된 이중섭의 진짜 그림보다 떨어지거나 조악하며 그림속 서명도 서체가 다르다는 설명을 달고 있다. 지난 3월 유족이 경매에 내놓은 '물고기와 아이' 등에 대해 감정협회는 같은 이유로 가짜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79년 이영진씨를 통해 국내에 넘어온 그림들은 모두 유족의 소장품이었으며 유족은 이와 별도로 지난 2년 간 20점 정도의 아버지 그림을 국내 미술시장에 내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중 6점이 경매에 출품됐다. 이런 가운데 현재 진위논란의 와중에 있는 그림들이 이중섭의 진짜 그림이라면 이중섭의 예술세계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이중섭의 그림들을 보면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 편차가 있으며 헤어진 가족에게 보낸 지극히 사적인 그림들 중에는 천재화가라는 이중섭이 그렸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작품도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작가가 처한 상황이나 정신상태 등에 따라 작품의 질에는 편차가 있고 죽을 때 질이 떨어지는 자기 작품을 과감히 폐기하는 작가도 있다면서 이중섭의 그림의 편차가 심한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말하는 지적도 있다. 작품의 질은 떨어지지만 작가의 생전의 다양한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어 그의 예술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일부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고 작가의 예술세계가 폄하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제 태성씨가 제기한 명예훼손 혐의 소송은 검찰조사를 통해 밝혀질 문제지만 태성씨가 가져온 그림, 나아가 시중에 있는 650여 점의 그림은 미술계 내부의 차분한 분석과 감정을 통해 작품의 진위를 가려야 할 때다. 이와 관련해 모 화랑의 대표는 "유족이 가져온 작품들이 진짜라면 작가의 태작이며 태작은 불태워지거나 폐기돼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값이 워낙 고가이다보니 위작도 많은 화가 이중섭, 유족이 내놓은 작품이나 모소장자가 보관하고 있다는 대규모의 그림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미술애호가는 물론 일반 국민의 궁금증은 더해가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류창석 기자 kerbero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