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나 영화.소설 등에서 폭군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연산군에 대한 통설을 뒤집는 주장이 제기됐다. 와 기자를 거쳐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신동준 21세기 정치연구소소장은 「연산군을 위한 변명」(지식산업사 刊)에서 「연산군일기」「중종실록」등 사료 비판을 토대로 연산군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시도했다. 그에 따르면 연산군은 미치광이 폭군이 아니라 제왕의 신분의 풍류를 즐긴, 왕권강화에 남다른 집착을 보인 인물이라는 것. 연산군 폐위 이후 중종 반정공신들이 정치적 이유에서 역사 기록을 폄하.과장.조작하며 연산에 대한 폭군의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저자는 연산군에게 씌워진 오명에 대해 반증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주장을 논증했다. 우선 연산군을 폭군으로 모는 대표적 근거인 인수대비 상례를 둘러싼 '전례 파괴' 사건은 성리학적 원칙을 지키면서도 허례허식을 고치기 위한 시도였다는 설명.그는 상례를 '이일역월제'로 치른 것은 왕통의 정통성을 수호하는 차원에서 인수대비와 안순대비를 동등하게 대우할 수 없다는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한 것이며, 국기일을 폐지한 것은 허례허식으로 기우는 성리학의 폐해를 고치기 위한 수술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연산군을 음탕한 군주로 묘사하는 데에 애용되는 소재인 '요부 장녹수'의 역할도 왜곡됐다고 보았다. 장녹수가 연산군의 총애를 받는 후궁인 것은 사실이지만,그녀의 작첩이 연산 폐위때까지 겨우 정3품인 소용(昭容)'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미뤄 그녀는 '전설적인 요부'에는 미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는 것. 연산군을 폭군으로 모는 결정적 근거인 무오사화(戊午士禍)와 갑자사화(甲子士禍) 역시 연산군이 무고한 신하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무오사화는 정통성리학을 맹종하는 소장 신권세력이 하나의 당파 형성 조짐을 보이면서 급기야는 왕통에 대한 불경한 움직임마저 보인 데 따른 필연적인 반작용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참화를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소장 신권세력인 것이다. 갑자사화는 피화자의 대부분이 '불경죄'나 '예비적 불경죄'의 죄목으로 참화를 당함으로써 '과잉방위'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잉방위 역시 그 본질은 정당방위인 것처럼, 갑자사화 역시 '정당방위'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저자는 연산군이 자신의 치세를 너무 과신하다가 소인배들을 충신으로 착각, 믿었던 신하들에게 하루 아침에 왕위에서 쫓겨났다고 지적하며 그의 몰락은 조선왕조 역사에서 신권이 왕권을 누르고 군신공치(君臣共治)가 당파정치로 변질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480쪽. 2만원. (서울=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kyung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