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가 1856년 발표한 장편소설 <마담 보바리>가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유부녀의 간통을 다룬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성애 묘사도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노골적이었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기소돼 재판까지 받았다. 유능한 변호사 덕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추악한 것을 그릴 때도 아름다움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사실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의의가 큰 작품이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플로베르는 1821년 노르망디 중심 도시 루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외과 의사였던 영향을 받아 과학을 일찍이 접했고, 세밀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법대에 진학했지만 뇌전증(간질) 발작을 겪은 뒤 법학을 그만두고 문학에 몰두했다. <마담 보바리>로 명성을 얻었지만 후속작은 생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5년의 시간을 들여 1869년 펴낸 <감정 교육>은 섬세하고 무기력한 한 청년의 생애를 음악적이며 균형 잡힌 문체로 그려낸 걸작으로,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대 비평가들에게 냉혹한 비판을 받았다. 왜 괴테, 바이런 같은 작가들의 낭만주의 전통을 따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판매량도 저조했다. 초판 3000부가 출간 4년이 지난 시점에도 계속 팔렸다.임근호 기자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음악 신동이라고 해서 모두 거장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탄탄한 기본기와 독보적 음악성, 작품을 해석하는 탁월한 시선을 갖춰야만 나이가 들어도 치열한 클래식 음악계에서 살아남는다. 어릴 때부터 ‘비르투오소(virtuoso·기교가 뛰어난 연주자)’로 주목받은 영재라면 성장하는 시간은 더 혹독하다. ‘기계 같은 연주’ ‘모범생 같은 연주’ 등 선입견에 갇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 일쑤다.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45)은 천재 연주자를 둘러싼 세간의 걱정거리를 떨쳐버리고 ‘21세기 바이올린 여제(女帝)’로 올라선 인물이다. 10대 때부터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뉴욕 필하모닉 등 명문 악단의 솔리스트로 발탁되면서 출중한 연주력을 증명했다. 성인이 되고는 그래미상 세 차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상, 에이버리 피셔상 등을 잇따라 품에 안으면서 작품에 대한 깊은 탐구력, 빼어난 표현력까지 갖춘 진정한 음악가로 인정받았다.지난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힐러리 한 리사이틀은 ‘명불허전’을 입증한 100분짜리 무대였다. 그는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해플리거와 함께 ‘역사상 가장 완벽한 바이올린 소나타’로 불리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3번) 프로그램을 선보였다.첫 곡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비의 노래’. 힐러리 한은 깨끗하고 명료한 음색과 밀도 있는 보잉(활 긋기)으로 비 오는 날 특유의 온화하면서도 쓸쓸한 악상을 읊어냈다. 현에 가하는 장력, 보잉 속도, 비브라토 폭 등을 정교하게 조절하면서 작품의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풀어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지휘자 정명훈은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특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001년부터 도쿄필의 특별 예술고문으로 있으며 2016년에는 명예음악감독 직위가 추가됐다. 2015년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직을 떠난 직후 이런 영예를 얻어 느낌이 남달랐을 것이다. 귀한 인연에도 불구하고 정명훈과 도쿄필의 내한 공연은 생각보다 무척 드물어 양자가 정식 단독 투어로 서울을 찾아온 것은 2005년 이후 19년 만의 일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인 만큼 얼마나 준비를 철저히 한 무대일까 궁금해하며 지난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연을 참관했다.베토벤 작품으로만 채운 이번 공연에서 첫 곡은 ‘삼중 협주곡’이었다. 정명훈이 피아노를 겸해 연주했는데 이 곡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가 될 법했다. 정명훈은 지휘자로서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로도 나머지 두 사람을 충실하게 뒷받침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와 첼리스트 문태국은 서로 훌륭하게 조화를 이뤘다. 그윽한 첼로 선율로 시작한 2악장은 꿈꾸는 듯 흘러갔고, 3악장에서 독주자들이 전보다 힘을 줘 한결 생기가 도는 연주를 들려준 것도 인상적이었다.2부 순서는 교향곡 제9번 ‘합창’이었다. 정명훈은 앞서 삼중 협주곡에서 그랬듯이 이 곡에서도 전통에 충실한 해석을 보여줬다. 이런 해석은 유럽이라면 몰라도 동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며, 이는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의 반응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전반 악장은 평이한 수준이었으나 지나치게 느리지 않으면서 카타빌레적인 느낌과 생동감을 잘 살려낸 3악장은 훌륭했고, 4악장에서 기악만으로 진행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