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명품의 역사는 여행가방과 시간의 흐름을 같이한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자동차 철도 등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여행의 묘미에 빠져들었다. 귀부인들은 화려한 드레스를 넣을 견고한 가방을 필요로 하게 됐으며 에르메스 루이비통 프라다 등 유명 브랜드들은 그들을 만족시킬 만한 독창적인 디자인의 가방을 선보이면서 그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올 가을 여행가방에다 낭만을 담고 가을의 시간을 찾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1854년 프랑스 시골마을 출신의 목수 루이비통은 집안 대대로 이어받은 목공기술을 활용해 윗부분이 평평한 모양으로 된 직사각형의 트렁크를 개발했다. 이전까지 트렁크의 뚜껑은 불룩한 형태의 반원형이었기 때문에 위로 포개어 쌓을 수가 없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이 직사각형 트렁크는 청년 루이비통을 성공으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지금과 같은 패션 대그룹으로서의 명성을 누릴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마구상인 에르메스는 1892년 여행객들을 겨냥,승마 도구를 넣을 수 있는 커다란 가방 "오트 아 크로와"를 만들었다. 장거리 이동에도 헤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박음질된 이 가방은 고급 백의 대명사인 "켈리 백"의 원조이자 에르메스의 첫번째 가방이기도 하다. 에르메스는 또 흔들리는 자동차 안에서 수납이 편하도록 여밈 부분에 지퍼를 단 가방 볼리드(Bolide,레이싱카)를 선보였다. 20세기 들어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여행가방은 디자인과 기능,소재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루이비통의 손자인 가스통 L.비통은 1959년 가방 소재의 유연성과 내구성을 높여주는 새로운 코팅법을 발명해 지금의 모노그램 캔버스를 완성했다. 1990년대 에르메스는 열대지방에서 나는 파라고무나무의 수액을 면에 입힌 아마조니아 소재를 개발했다. 면이지만 방수가 되고 찢어지지 않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광택이 살아난다는게 장점.무게도 가죽보다 가볍다. 이탈리아 브랜드 테스토니도 다양한 디자인의 여행가방을 선보이고 있다. 일반 소가죽보다 질기고 고급스러운 표면감의 순록가죽 트렁크는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스테디셀러.가장 최근 내놓은 상품은 t자 로고가 들어간 면자카드 소재의 큼직한 보스턴백과 트렁크다. 현대의 여행가방은 단순한 패션잡화가 아니다. "과학"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첨단화됐다. 미국 브랜드 투미(TUMI)는 우주 항공에 사용되는 소재를 트렁크에 도입했다. 가방 전면을 나일론 대신 내구성이 강한 항공섬유로 감싸고 손잡이 부분은 항공기에 사용하는 강하고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제작했다. 바퀴 소재로는 2백 파운드 이상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강철이,위쪽 여밈 부분에는 낙하산 멜빵용 끈이 쓰였다. 설현정 객원기자 hjsol1024@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