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은 벌써 봄이다. 길섶엔 풀빛이 파릇파릇하고 얼음옷을 벗어버린 시냇물 소리도 경쾌하다.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의 모악산 불갑사(佛甲寺).백제에 처음 불교를 전한 인도승 마라난타가 남중국을 거쳐 백제 침류왕 1년에 영광땅 법성포로 들어와 세운 최초의 사찰로 전해지는 곳이다. 모든 사찰의 으뜸이요 시원(始源)이라는 뜻의 "불갑"이라는 절이름도 그래서 생겼다. 이 유서깊은 절의 염화실(拈華室)에서 조실 지종스님(知宗.80)을 만났다. 노장(老長)을 모시고 있는 시자(侍者)스님이 차 대신 주전자와 빈 잔을 하나 내왔다. 주전자에 담긴 것은 고로쇠 수액(樹液).시원하면서도 약간 달착지근한 맛이 다시 한번 봄기운을 전해준다. "불법(佛法)은 언어일체가 돼야 하거든.말만 앞세우고 실행이 없으면 잘못된 것이야.말로,행동으로 실천해 나가는 게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야.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귀의처가 되니 일부러 포교할 필요도 없어" 법문을 청하자 노장은 언행일치부터 강조한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자기 이름만 내세우는 사람들에 대한 꾸짖음이다.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각종 '게이트'와 툭하면 '모든 게 네 탓'이라며 벌어지는 싸움판도 언행일치가 안돼서 그런 것 아닐까. "예전에는 회적도명(晦跡逃名)이라,발자취를 감추어 사람들의 눈에서 멀어지고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피했어.그러나 지금은 다들 자기 이름을 내세우려고 하다 보니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어.말로만 공명정대를 외치지 말고 솔선수범해야 돼.그러면 자연히 세상이 밝아져" 노장은 "스스로 수양해서 자기를 깨우치면 남을 도우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돕게 된다"며 "자기 낯(相)을 내기 위해 억지로 돕는 것은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꼬집는다. 신망을 잃고 있는 지도층에 대한 경책이 이어진다. "말만 국민이 주인이요,대통령은 머슴이라고 해놓고 실제로 머슴노릇을 하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아.말로만 똑똑한 소리,바른 소리 하지 말고 자기 주변 사람들이 잘못하면 즉각 바로잡아야 할 것 아니야.전국민이 자기를 밀어주더라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사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 말이 난 김에 정치 지도자의 자질론도 들어봤다. 노장은 주저없이 지도자가 갖춰야 할 요건을 조목조목 꼽는다. 첫째 공심(公心)이 있을 것,둘째 바른 양심을 가질 것,셋째 언행이 일치할 것,넷째 아집을 버릴 것.지도자가 나쁜 짓을 하면 자기만 망하는 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욕심 때문에 눈과 귀를 가리고 살아.감투만 크니까 눈이 보이겠나,귀가 들리겠나. 부처님 법은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라,모든 것이 마음 가운데서 나왔어.그러니 마음부터 고쳐 먹어야 해.마음이 무식한 놈이 문자만 유식하면 사기꾼이 돼.반대로 마음도 유식하고 학문도 유식하면 금상첨화고…" 노장은 "불교는 마음을 배우는 종교"라며 "부처님을 믿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불법을 배우면 자연히 신심도 나오고 공덕도 쌓게 되며 아픈 사람을 어루만질 줄도 알게 된다는 설명이다. 불법의 요체는 '공(空)의 도리'라고 노장은 단언한다. 많은 경전 가운데 금강경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싹 비워 버리면 진짜가 나와.우주가 텅 비었으니까 삼라만상이 다 들어가잖아.우리 마음에도 무궁한 조화가 있는데 그 조화를 응용하지 못해.우리 마음은 늘 그대로인데 잡것이 끼어서 빛을 발하지 못하기 때문이지.금강석에서 잡철을 털어내고 진금(眞金)을 뽑듯이 우리 마음에 낀 잡것을 탁 털어버리면 본체,즉 진금이 나와.그 정신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지" 진공묘유(眞空妙有·참으로 텅빈 곳에 진리가 있다)라는 얘기다. 그리고 금강석에서 잡철을 털어내는 방법이 바로 수행이다. 상근기(上根機·근기가 뛰어난 사람)면 참선이 제 격이지만 염불,주력,기도 등 다른 수행방편도 괜찮다는 설명이다. "마음에 어떤 생각이 나거든 '아이쿠' 하며 그 마음을 살펴보고 연구해본 다음 잘못됐으면 다시 요리를 해야지.문자속으로 배운 것 가지고 요리를 하다간 사람 다 죽여" 그러나 노장은 정작 자신은 타고난 박복함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속가에선 자신이 태어난 뒤로 집안에 우환이 잇달아 어릴 때부터 '버려야 할 아이'로 불렸다. 열아홉살에 백양사로 출가해서는 법당 부전(법당을 관리하는 소임)을 보며 강원공부를 해야 했고,백양사 개암사 불갑사 등 '돈 없고 부서진' 절의 주지를 하느라 공부할 틈이 없었다고 했다. "내가 지금 쉰살만 됐어도 공부하러 떠났을 게야.공부는 젊을 때 해야 하는데 육신덩어리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해.허망한 것이거든.다만 무상하지 않은 것은 심성(心性)이라,애착의 때를 벗겨내고 닦을수록 광채가 나지" 노장은 선가귀감(禪家龜鑑)의 한 구절을들려주며 '한 물건'을 찾으라고 경책한다. '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從本以來(종본이래·본래부터) 昭昭靈靈(소소영영·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不曾生不曾滅(부증생부증멸·일찍이 나지도,죽지도 않았고) 名不得狀不得(명부득상부득·이름 지을 수도,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영광=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