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6월20일. 런던 증권거래소는 긴장했다. 프랑스와의 워털루 전투 결과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의 공채가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갈 것이었다. 사람들은 ''로스차일드의 기둥''을 보았다. 투자의 귀재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주식을 사고 팔 때 늘 기대어 있는 기둥을 모두들 그렇게 불렀다. 먼 곳에서 벌어진 싸움의 결과를 가장 빠른 파발마가 알려주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시절. 소문으로는 영국이 불리했다. 그런데 네이선이 기둥에 기대어 천천히 영국 공채를 팔기 시작했다. 영국이 패한 것으로 판단한 추종자들이 일제히 매도 주문을 냈고 영국 공채는 폭락했다. 하한가까지 값이 내렸을 때,네이선의 손가락은 별안간 매입신호로 바뀌었다. 그가 바닥값에 엄청난 양을 사들이는 속셈을 사람들이 눈치챈 것과 거의 동시에 ''영국군 대승'' 뉴스가 날아들었다. 공채는 폭등세로 돌아섰고 그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을 순식간에 벌었다. 전쟁에서 졌을 경우 그는 빈털터리가 됐을 것이다. 비결은 뭘까. 그는 정부보다 빨리 전황을 알 수 있는 특유의 정보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데릭 윌슨 지음, 신상성 옮김, 동서문화사, 전3권, 각권 1만원)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책은 세계 최대 금융왕국을 건설한 유대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얘기를 담고 있다. 2백50여년 전 프랑크푸르트 게토(유대인 빈민가)의 고물가게에서 화폐수집상과 환전상으로 기반을 닦은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 그는 다섯 아들을 프랑크푸르트와 런던, 파리, 빈, 나폴리로 보내 막대한 부를 쌓으며 오늘날의 로스차일드 가문을 일군다. 이들은 나폴레옹 전쟁과 러시아.프랑스 혁명, 2차대전 등 세계적인 사건을 배후조종하거나 직접 개입하면서 지구촌의 정치.경제를 주름잡는 절대 강자로 성장했다. 특히 부의 원천인 석유와 다이아몬드, 금, 우라늄, 백화점, 금융업계를 장악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대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하벙커에서 진두지휘한 딕 체니 부통령과 국제금융시장의 큰 손 조지 소로스도 로스차일드 가문의 핵심인사라고 한다. 저자는 로스차일드 일가의 견고한 결속력과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력, 뛰어난 분석력이 전세계를 주무르는 힘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천대받는 유대인의 자손으로서 그들이 보여준 결속력은 오늘날에도 ''다섯개의 화살''이 그려진 방패 문양에 그대로 남아 있다. 유럽 최대 철도 사업이 반대에 부딪히자 노선 이름에 황제의 명칭을 붙여 아무도 저항하지 못하게 한 일화도 흥미롭다. ''금화가 소리를 내면 욕설은 조용해진다'' ''돈으로 열리지 않는 문은 없다''는 등의 유대 격언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