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와 펠릭스 가타리(1930-1992)가 함께 쓴 「천 개의 고원」(새물결)이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우리의 모든 사유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사유하는 방법에 대한 사유'말하자면 일종의 '사유학'(noology)을 겨냥하고 있다. 방법을 정교하게 구축하는 대신 그러한 방법론이 어떤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며, 이념의 논리를 찾거나 이를 비판하는 대신 그러한 이념이 어떤 근거에서 발생하는지를 고고학적으로 탐사했다. 최종 목적은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여는 것. 책에 따르면 지금까지 서양의 사유는 일종의 장기 게임과 같았다. 각각의 개체는 특정한 이름이 부여돼 '주체'가 되지만 이 주체는 실제로는 가는 길과 역할이 고정돼 있는 노예와 같다는 것. 이에 반해 바둑은 모든 돌이 평등하고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이 없다. 중심도, 주체도, 위계도 없는 사유의 전형을 보여 준다. 중심과 질서가 사라져 가는 최근의 사회상황을 새로운 창조와 변신의 기회로 여기는 두 저자는 수많은 '비질서들'의 접속이 새로운 시대의 모럴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비질서들'이란 반체계적이고 반시대적 사유들을 일컫는다. 네티즌의 시대가 열린 지금 우리가 열어 나가야 할 정신적 지도를 적확히 그려낸 이 책의 1천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조차 동시대의 철학을 읽는 즐거움을 생각하면 결코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다. 1천쪽. 4만원.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