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 세계관으로 개성적인 시적 미학을 성취한 원로시인 김구용(79)씨의 대표시들을 모은 2권의 시집 "뇌염(腦炎)"과 "풍미(風味)"(솔)가 나왔다. 한국전쟁의 참화가 극심했던 지난 195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시인의 작품에 최근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발간된 시집들이다. 지난49년 김동리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은 50년대 이후 은둔생활을 하며 극소수의 작품을 내놨고 시적 난해성이 겹쳐 작단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어렵지만 도저한 사유의 지평위에 구축됐고,혹독한 시대고(苦)를 드높은 예술성으로 승화시켰다. 당대 시인들이 격정이나 논리의 극단에서 현실을 읊었던 것과 달리 시인은 건조한 문체와 논리부재의 어법으로 "부조리한 세상"과 맞서고 있다. 그것이 시대정황에 가장 정직한 방식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시 "희망"은 절망의 끝에서 신생(新生)을 다짐하지만 그 내적충일은 삼자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그려졌다. 작가는 전쟁의 부조리에는 정제된 형식보다는 즉응적 표출이 효과적인 산문시 형식을 취했다. 이 어법은 탱크가 전진하는 모습을 담은 "인간기계"에서도 나타난다. "마음은 철과 중유(重油)로 움직이는 기체(機體)안에 수금(囚禁)되다. 공장의 해골들이 핏빛 풍경의 파생점을 흡수하는 안저(眼底)에서 암시한다.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