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일 KBS홀,예술의전당에서는 북한 최고 오케스트라인 조선국립교향악단(이하 조선국향)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한공연을 가졌다.

이에 앞서 16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중 하나인 부천필하모닉이 말러 교향곡 4번 연주회를 열었다.

민족 전통가락을 담은 창작곡을 발전시켜온 북한 음악계와 서양음악에 주력했지만 나름대로 충실한 연주력을 쌓아온 우리 음악계의 현주소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남북이 서로 음악적 성과물을 교류,보완하고 한국음악의 새로운 원형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계기였다.

[ 조선국립교향악단 ]

"우리 교향악은 우리 인민이 즐겨 부르는 민요와 널리 보급된 명곡을 편곡하는 원칙에서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식 관현악이 지향하는 바다.

그래서 △전통민요의 신나는 장단과 애조띤 선율 △혁명승리에 대한 믿음을 담은 낙천적이고 선이 굵은 음악이 주조를 이룬다.

일반인도 쉽게 감동할 수 있는 멜로디를 중심으로 10분을 넘지 않는 짤막짤막한 작품을 주로 창작해온 것이다.

북한음악의 특징은 20일과 21일 열린 조선국립교향악단(이하 조선국향) 단독공연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민요와 민속가락에 기반한 관현악곡 ''아리랑''''그네뛰는 처녀''는 친숙한 선율로 빚어낸 명곡이었다.

이 부분에서 기자는 우리나라 작곡가들은 왜 이런 좋은 모티브들을 활용하지 않았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너무 서양음악에만 집착해서일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가요적인 선율에만 극히 의존하는 소품은 이미 현대음악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적 음악재료를 활용해 예술적 향취가 높은 대작들을 창작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남한 음악계가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젓대(개량 대금) 장세납(개량 태평소) 등 죽관(竹管)악기가 가미된 배합관현악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연주회의 수확이다.

전통악기를 개량해 서양악기와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북한 음악인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차가운 서양악기에 따뜻한 우리의 숨결을 담은듯 했다.

조선국향의 객관적인 연주력은 로시니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서곡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4악장''에서 어느 정도 나타났다.

관악파트를 현파트와 적절히 조화시키고 마치 한사람이 연주하는듯 한 합주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소리의 밀도가 단단하지 못해 조금은 푸석푸석한 음향에 그친 점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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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평범"이란 낱말은 "비범"이란 대조어 때문에 항상 밑진다.

하지만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흐트러짐 없는 균형감을 가졌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뉘앙스는 또 달라진다.

"평범=깨끗함=거짓없음=투명함"으로까지 연결시키면 너무 자의적일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부천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4번 연주회는 이같은 "평범의 미학"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 자리였다.

이날 부천필의 연주는 전반적으로 평범했다.

특별히 톤과 강약을 크게 대비시키지 않았다.

지휘자 임헌정은 일관되게 스코어(악보)의 절대음과 화성을 있는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평범한 해석은 그러나 말러의 다층적이고 이중적인 작곡의도를 모두 담고 있었다.

어린이의 눈에 그려진 아름다운 "천상의 삶"과 그것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때묻은 어른들의 체념이 임헌정의 객관적인 지휘속에 녹아있는 듯 했다.

화려한 색채감을 살린 자신감 넘치는 연주,매끈하고 투명한 연주도 돋보였다.

한마디로 평범한 해석에 담은 비범한 연주였다.

협연자인 소프라노 에디트 마티스(62)는 3악장이 시작될 때 무대로 나와 지휘자 앞에 앉았다.

3악장 내내 부천필의 연주에 귀기울이는 표정이 어린 아이처럼 맑았다.

부천필의 연주력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4악장에 이르러 흘러나온 마티스의 노래에는 그의 관록이 물씬 배어있었다.

정확한 발성에 곡의 이해력도 뛰어났다.

나이에 비해 젊고 싱그러운 목소리도 객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힘이부쳐 호흡이 길지 못했던 점이 옥에 티였다.

마티스는 교향곡 4번에 앞선 무대에서 모차르트 모테트 "엑슐타테 유빌라테(춤추라 기뻐하라,행복한 넋이여)"를 불렀다.

말러 교향곡 전곡연주회 3번째 무대여서 그랬을까.

부천필도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에 처음으로 앵콜로 화답했다.

앵콜곡은 모차르트 모테트 "아베 베룸 코르푸스".

처음과 마지막을 모차르트 모테트로 장식한 애교있는 연출이었다.

장규호 기자 seinit@ hankyung.com